詩 사랑

산 . 131(홍원기)

요술공주 셀리 2022. 9. 30. 16:44

산을 오르며 생각한다

내 밟고 온 것이 흙이 아니었구나

바위도 아니고

등허리 내어준 능선이 아니었구나

잡풀들 숨소리를 밟고

산의 침묵과 너그러움을 밟고 왔구나

내 이 나이까지 밟아온 것이

슬픔이 아니었구나

희망을 밟고 왔구나

희망을 밟고 사람을 건너 여기까지

왔구나

산다는 게 희망이 아니더냐

나도 누군가의 희망이었으리라

누군가의 위안이 되고 사랑이 되었으리라.

 

(2013, 홍원기 세 번째 시집 山 時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