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기억과 추억 사이

요술공주 셀리 2022. 10. 2. 11:47

오래전, "선생님, 저 ㅂ중학교 제자 김00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말하는 제자라고하는 남자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잘 알지 못하니 전화 통화를 하고 그냥, 잊고 지냈었다.

절친인 고향친구가 늦은 밤, 전화를 했다. "나야, 오늘 예총 일로 김00을 만났는데 네 제자라고 하던데, 세상이 참 좁구나." 이렇게 잘 모르는 제자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는데......

제가 중학교에서 미술반 활동을 하였는데, 젊은 미술 선생님에게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미술 수업이 없는 실업계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화가의 끈을 놓지 않고, 아주 어렵게 미대에 진학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그 젊은 미술 선생님을 만났는데, "꿈은 이루어진다. 넌 꼭 화가가 될 거야"라는 말을 듣고 힘을 얻고 매진한 결과였습니다. 그 선생님 성함이 000인데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했단다.

친구는 문인협회 회장으로 제자는 예총 회장으로 일로 만난 자리였다는데 친구로 인해, 1984년에 졸업한 제자를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 여기 좀 보세요. 이 아이가 바로 저랍니다." 중학교 앨범을 들고 와 본인을 찾아 소개하는 중년의 남자와 앨범 속의 소년을 번갈아보니 실낱같은 기억이 살아나는 듯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화가가 된 것은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성공해서 꼭 찾아뵐 생각이었습니다." 하는데도 기억 저편 어딘가에 내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직 생활 중에 생각나는 몇 안 되는 기억 속에 영향을 줄만한 사건이 일치하지 않으니 자꾸만 미안한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친구와 제자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김00의 말을 들으며,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때는 작은 불씨도 힘이 될 수 있었겠구나' 싶어 제자의 감사해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 '추억'이고,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이 '기억'이라면 제자는, 중학교의 젊은 미술 선생님을 기억하는 것일까? 추억하는 것일까?

제자가 건네준 직접 그린 추상화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다.
젊은 날, 보다 많은 소년 소녀들에게 좋은 추억거리, 기억거리를 더 많이 만들어 줄 것을.....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이끌어 줄 것을......

제자야! 오늘 너로 인해 불우했던 환경을 극복하고 화가가 된 한 사람을 간직할 수 있게 해 주어 참 고맙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김 00, 감정의 흐름 4, 2022년, 캔버스에 혼합재료, 65.1 × 53.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