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사랑

해질 무렵 어느 날(이해인)

요술공주 셀리 2022. 10. 6. 19:59

꽃 지고 난 뒤

바람 속에 홀로 서서

씨를 키우고

씨를 날리는 꽃나무의 빈 집

 

쓸쓸해도 자유로운

그 고요한 웃음으로

평화로운 빈 손으로

 

나도 모든 이에게

살뜰한 정 나누어주고

그 열매 익기 전에

떠날 수 있을까

 

만남보다

빨리 오는 이별 앞에

삶은 가끔 눈물겨워도

아름다웠다고 고백하는

해질 무렵 어느 날

애틋하게 물드는 내 가슴의 노을빛 빈집

 

 

(1999, 이해인,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