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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시인

요술공주 셀리 2022. 10. 27. 09:25

방송이나 신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우린 연예인, 또는 유명인이라고 한다.
지면을 통해 친구의 근황을 보았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방송에서 낯 익은 목소리를 들었을 땐, 그녀의 성공을 실감했다.

우린, 중학교 동창이다.
소위 '뺑뺑이' 1세대인 우리는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 받았는데 하필 '똥통학교'로 소문난 학교에 배정을 받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우열반'이 존재하던 그 시절, 기말고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우등반에서 선두를 지키던 그녀는 인기가 많았다. 경쟁자이기도 했던 그녀와 우정을 쌓기엔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었다가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창이 되면서 인연을 이어 갔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친구의 아버지셨는데 그래서였을까? 친구는 국문과를 진학했다. 그때까지도 우린 동창회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정도였는데, 은사님이셨던 친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은사님의 안타까움보다 친구의 슬픔을 위로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인데 그 마음을 친구가 오래 오래 마음에 두는 것 같다.

친구는 충청도에서 국어교사로, 난 서울에서 분주한 시간을 보내면서 우린 '뜨거운 냄비' 보다는 '먼지처럼', '먼지가 자라듯' 시간을 공유하고 '먼 곳의 가까운 당신'이 되었다.

일찌감치 퇴임을 한 친구가 시 공부를 한다고 자주 서울에 올라왔다.
늦은 나이에 열정으로 빛나는 눈을 바라보며 '이 친구, 일 내겠구나' 했는데 "나 시인 됐어" 하더니 첫 시집에 이어 수필집과 두 번 째 시집을 출산한 것이다.

향기 복, 붉을 주라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말하기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더 즐기는 사람. 친구들이 힘 들 때, 다 찾아다니며 위로해주는사람. 부모님을 모시면서 그 많은 친정과 시댁의 형제들을 두루 챙기고 희생과 봉사를 하며 신앙 안에서 사는 친구, 공주문인협회 회장과 문화재단 이사를 역임하면서도 늘 겸손한 사람이 내친구다.

진솔하고 따뜻한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쏟은 너의 시를 읽으며 " 참 좋구나"한다.
그런데, 나는 네 글 보다 넓고 따뜻한 먼지 같은 사림인 "네가 더 좋구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