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이제, 힘들어

요술공주 셀리 2022. 11. 14. 13:24

오늘, 할 일이 많으니 우선순위를 정해보자.
위급하고 중요한 일. 글쎄? 중요하나 위급한 일은 딱히 없다.
아, 중요한 일은 있다. 오늘은 아버님 기일이어서 제사 준비를 해야 한다.
12월 중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 예약도 해야 하고, 방충망 업체에 전화해서 일정도 잡아야 한다.
앗, 중요한 일이 또 하나, 동생네와 아들네에 김장 김치도 보내야 한다.
휴, 위급한 일 하나 더! 아직은 싱싱하나, 상할지 모르니 가리비도 쪄놓아야 하네.

할 일이 많으니 일찍 일어나서, 오늘은 기도부터 하자. 그런데 할 일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채, 묵주기도를 겨우 마치고 아침을 챙긴다.

이제, 택배 준비.
통에 담긴 김치를, 미리 준비한 비닐봉지에 옮기는데 아무리 조심해도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진다. 온 집안에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한다. 비닐의 공기를 빼내고 터지지 않도록 꽁꽁 묶어 보루 박스에 넣는다. 박스 또한 택배 도중에 망가지면 안 되니, 두꺼운 종이와 뽁뽁이를 사이에 끼워 비닐 테이프로 꼼꼼히 포장한다. 겨우 김치 두 박스 보내는 일인데 준비부터 정리까지 반나절, 가까스로 12시 점심시간 전에 우체국에서 택배를 부치고 마트에서 제사 준비 시장을 보고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해금한 가리비를 휘휘 저어 깨끗이 씻고, 체에서 물기를 뺀 가리비를 큰 통에 가득 쪄낸다. 쪄낸 가리비와 문어로 해물파전을 만들어 아버님 제사에 올릴 준비를 하고, 겨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든다.

40대 중반, 워킹맘으로 시작한 장학사 업무는 슈퍼우먼 그 자체였다. 교감 업무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다양한 꼭지의 문서처리는 기본, 잦은 출장이 업무를 지연시키니 반갑지 않은데, 웬 출장은 그렇게 많았었는지......
부담스러운 민원은 그나마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다행. 소리부터 지르고 욕을 퍼붓는 민원인이 찾아오면 사무실은 초비상이었다. 그걸 다 해냈었는데......

그런데, 오늘 일은 고작 한나절 거리의 양인데도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남편이 옆에서 채근해서? 암튼, 다 처리했으니 다행이다. 이제 좀 쉬었다가 제사음식을 준비해서 아버님을 뵈면 된다.

지금은 잠시 휴식시간.
앞서 간 육체가, 아직 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