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사랑

숲은 노을에 불을 당기고(이봉교)

요술공주 셀리 2022. 11. 16. 10:58

알곡들은 다 빠져나가

꼬투리

빈깍지만 구석자리에 남아 있다.

 

한 살이를 마감하는 저녁해가

마른숲을 피로 물들인다.

힘겨운 숲은 무겁게 입다물고

발밑으로 흐르는 차가운 물울림이

등너머로 흘러 내린다.

허리 굽혀 추스려

제치고 치밀어올려도

옷자락을 끌어잡는 저녁놀

검은눈 가장자리에 불방울로 떨어지고 있다.

 

숲은 노을에 불을 당기는

비비새 둥지

새들의 가락을

미광의 광주리에 담아 흔들고 있을 뿐.

 

 

  (1995, 천산 시집23, '바람이 불어도 등불은 끌 수 없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