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말이 있다.
대수능을 치르는 고사장 학교는 '아무리 잘해도 본전도 안 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생각해 가능하면 고사장 학교에 선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만큼 대수능이 예민하고 부담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은 아들이 수능을 치르던 때, 사람이 부족하다고 수험생 학부모인데도 '고사장 감독관'으로 차출되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들 도시락을 싸놓고 4시 30분, 강남교육청으로 향한다. '고사장 감독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수차례 들었던 주의사항을 듣고 고사장 학교의 교감선생님과 함께 시험지와 답안지의 매수를 확인하고 영어 듣기 평가 CD를 챙겨, 한 명은 경찰차에 한 명은 시험지 수송차인 탑차를 타고 고사장 학교로 출발한다.
띠요 띠요 경적을 울리는 경찰차를 타고 가노라면 아, 내가 지금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이 시간, 학교에서는 밤샘을 한 주무관님이 새벽부터 고사실에 히터를 가동하고, 수험생이 이용할 큰 보온 통에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고사장 본부요원과 학교장 또한 새벽 6시에 모두 출근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시험지가 도착하면 시험지와 답안지의 수량을 점검하고 영어 듣기 평가용 CD를 교장실에 보관한다.
전 날에 이어, 시험장 감독교사 회의가 열려 본부요원과 시험실 감독교사는 고사 관련 '주의사항'을 재차 확인을 한다. 이제부터 감독교사의 막중한 임무가 시작된다.
1차 전쟁은 수험생 입실 시간.
제한된 고사장 입실시간이 임박해지면 경찰차를 타고 오거나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수험생과 헐레벌떡 달려오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더러는 '일반 시계'를 빌려달라는 수험생도 있다. 전자기기를 소지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이 입실한 후에도 학부모님들은 도시락이나 수험표 등 자녀가 놓고간 물품을 전해달라 수위실에 맡기는데 가능하면 수험생들에게 물품을 전달해 준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난 뒤, 1교시 시험이 시작되면 수험생 시험실엔 침묵이 흐르지만, 복도 감독관은 시험장 이상 유 무를 확인하고, 시험 중간에 화장실 가는 수험생을 대동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난방이 안 되는 복도에서 업무를 하는 복도감독관은 하루 종일 '추위' 때문에 고생을 한다.
그런데, 수험생에게 생기는 안타까운 일들은 해마다 끊이질 않는다. '전자기기는 소지만 해도 부정행위로 간주한다'라고 수차례 주의를 주는데도 긴장한 수험생들이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거나, mp3를 소지해서 낭패를 보는 일이 있는데, 대부분 다른 수험생이 민원을 제기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재수생이거나 수시합격자이긴 하나, 고사 중에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도 안타까운 일이다. 저마다 이유가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시험을 치르면 좋을 텐데......
3교시.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는 비행기도 뜨면 안 된다.
교장과 행정실장은 학교 밖에서 가슴을 졸인다.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요" 트럭이 있어도 안되고 경적을 울리는 차량도 안 되니 경찰은 차량을 통제하고, 큰 소리를 내는 동네 주민들에게는 "쉿" 신호를 보낸다. 수험생들에게 잡음 때문에 집중을 방해하게 하면 안 되니,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아닐까 한다.
시험이 모두 종료되면, 수험생 답안지를 한 장 한 장 모두 확인한 뒤, 수험생을 퇴실시킨다. 하루 종일 고생한 수험생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고 돌아오면 어둑어둑 어둠이 내린다.
이제, 마무리 작업.
답안지 매수를 재차 확인하여 정해진 박스에 담아 단계별로 도장과 학교장 직인을 찍는데, 하나라도 누락되면 퇴근하는 교사가 도장을 찍으러 다시 학교로 돌아와야 하는 일도 있으니, 꼼꼼하게 확인을 해야 한다.
답안지 박스가 완성되면 고사장 감독관과 교감선생님은 답안지를 교육청으로 이송을 한다.
교육청에서는 재차 확인 작업을 하고 '완료' 사인을 보내는데, 여기까지 무사히 끝나야 대수능 고사장 업무가 완료된다.
교육청에서 돌아오는 교감님을 기다리다 지친 교사와 주무관들은 교감님과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무탈하게 치른 대수능에 감사하며 귀가를 한다.
아, 감사한 하루다.
고사장 학교의 교사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무탈 수능' 해주었으니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새벽부터 긴장한 하루여서 무척 피곤하지만, 긴장을 풀기엔 아직 이르다.
내일, 출근을 해서 별 다른 민원이 없기를 기도하며, 일찍 잠자리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