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공주 셀리 2022. 12. 12. 21:19

3월 초 어느 날, 이사 차량이 정차를 하고 짐을 나른다.
윗집 ㅎ사장님은 서로 안면을 튼 사이라서 이제 자주 가 보려 했는데, 아주 멀리 이사를 가 버렸다.

한동안 비어 있던 집에 빨강 자동차가 주차를 하고 이런 저런 가재도구를 나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새 사람이 이사를 오시나?"

햇볕이 화창한 4월 어느날 오후.
옥이님이 이사떡을 가지고 우리 집에 왔다. "안녕하세요? 윗집에 이사 왔습니다."
우리는 처음 그렇게 강원도에서 만났다. 맛있는 떡을 먹었으니 동생과 함께 '술술 잘 풀리시라' 휴지를 들고 윗집을 방문했는데, 노랗게 우러난 '칡꽃 차'를 내왔다.
그때부터 우린 칡꽃처럼 '보랏빛 향기' 폴폴 나는 향기로운 사이가 되었다.

옥이님은 언니가 많은 집의 막내라서인지 어느새 나를 '언니'라고 살갑게 부르고, 나 또한 그렇게 불리는 게 싫지 않더라.

4월에 만나 9개월여 되었지만, 우린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보고 느끼는 몇가지가 있는데,
항상 남편과 함께인 부부가 정스럽고 서로를 아껴주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는 것.
옥이님이 음식을 아주 잘하는 베테랑이라는 것. 아, 창문에 직접 수놓은 커튼과 퀼트로 만든 작품이 많은 것으로 보아 손재주가 많다는 것. 남편은 큰 키만큼 시원시원하나 정이 많고 섬세해서 우리 집의 키 큰 나무를 다 전지해 준 일.
서로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어도 자주 밥을 같이 먹고 만나며, 어느새 가족 같이 되었다.

고마워서 밥을 사고, 보답해야 하니 또 밥을 같이 먹고 평창 재래시장, 상원사와 횡성숲체원, 주문진 바닷가도 같이 가고 최근엔 동강과 정선까지 두루 섭렵하며 돌아다녔다.

만난지 엊그제 같은데 옥이님은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사정상 일주일의 반은 본가에, 반은 이곳에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날은 아침부터 콧노래요, 창문에 목을 빼고 주차장에 빨강 자동차가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음식을 날라다 챙겨주었고, 때 때로 맛있는 감자탕과 좋아하는 호박죽 등 수많은 음식을 나눔 해 주었는데, 그 보다 마음을 훔쳐간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
그것은, 마음만 앞선 김장을 하면서였는데, 선무당이 사람을 잡다가 그만 허리를 다쳤을 때, 옥이 부부의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소를 넣어 통에 넣기까지 앉아 있기 힘들어 누웠다 일하다를 반복하고 있을 때, 옥이님 부부가 와서 모든 뒷정리를 다 해준 일이다.
"언니, 우리랑 같이하자고 했는데 왜 혼자하느라...참 내 원....."
남편은 무거운 김치통을 날라다 주고 옥이님은 남은 김장을 다 마무리하고 설거지까지 다 한 후에야 부부는 돌아갔다.
아마 그때인 것 같다. 감동으로 무장이 되어 사랑에 빠진 것이......

오늘은 다 저녁 때가 되어서야 빨강 자동차가 도착했다.
"우왕, 우리 옥이 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문을 연다.
그동안 "옥이님, 옥이씨"라고 불렀는데 나도 모르게 '옥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밤이 되니, 옥이 집에 불이 환하다.
온 동네에 빛이 가득하고, 내 마음엔 웃음꽃이 가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