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소망
시아버님은 학교 은사님이셨다.
서양화를 2년여 가르치셨는데 유난히 섬세하고 자상하셨다. 은사님이 시아버지가 될 줄이야......
자상하시던 은사님이 시부모가 되신 후엔 '보수적인 어른'이 되셨는데, 종가의 제일 큰 어른으로 묵직한 책임을 다 해내셨다. 덕분에 아버님과의 대화는 집안 대소사와 아이들 이야기가 대부분, 당신의 작품과 그림에 대해선 대화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인 큰며느리가 아버님을 이어 그림 그리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미술 교과서를 집필하실 때에도 곁에서 일거리를 주시며 도울 수 있게 하셨고, 전시회에도 자주 데리고 다니셨다. 종가의 종부라서 어머님 곁에서 집안일을 배울 때에도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전문직을 하면서 더 이상 별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큰 아이가 어렸을 때에도, 작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드물게라도 붓을 잡았었는데, 교육청에 근무하면서 전공은 아예 잊어버렸다. 누가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도 숨 쉬기 힘든 부모님 모시기와 정신없이 일에 치인 전문직 생활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어준 염색은, 길고 가느다란 생명줄. 다시 붓을 잡을 수 있는 끈이 되었다.
그렇게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림 그리면 되겠네"
퇴임을 할 때 사람들이 던진 말이 씨가 되었을까?
아들의 부탁을 용기 삼아, 해바라기(봄)를 시작으로 어느새 8장의 작품을 완성했다. 11월에 시작했으니 아무리 소품이라도 참 많이도 그렸다.
그러나, 그리기 작업은 늘 양날의 칼. 과정은 즐거우나 완성은 괴로움이다. sign은 하지만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다시 보면 늘 부족하고, 뜯어고치고 싶고, 다시 시도해 보고 싶고...... 도무지 만족이 안된다.
오늘은 은사님이 너무 보고 싶다. 계셨다면 완성한 작품에 분명 조언을 해 주셨을 텐데, 특유의 손 짓으로 칭찬과 함께 부족한 부분도 짚어주셨을 텐데......
가족사진 안에서 웃고 계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지만, 그저 웃고만 계시다.
눈물을 글썽여도 "울지 마라"하지 않고, 그냥 웃고만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