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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막심

요술공주 셀리 2023. 1. 9. 23:22

지난 일요일 밤에 막냇동생네 가족이 내려왔다.
조카들이 방학을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기도 하고 재미있는 시골경험도 하기 위해서다.
동생은 4남매를 두었다. 승용차 한 대에 식구들이 다 탈 수 없어 애들 엄마는 따로 버스로 내려오고......
조카들이 눈 밭에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있으니, 적막하던 강원도가 아이들 목소리로 들뜨고 생기가 난다.

우리 엄마는 아들바라기다.
특히 막내아들에겐 늘 무장해제요 내리사랑, 무한 사랑이다.
그런데 엄마는 마음만 앞섰지 살림에서 이미 졸업을 하셨으니, 몸보다 입이 앞선다. 하여, 엄마의 마음으로 동생맞이를 대신 준비한다. "대 식구는 힘들어. 식구 많은 밥은 해 본 지 오래니, 손수 차려 먹으렴" 동생네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골국은 지난주에 이미 끓여 놓았고 흰떡도 토요일에 방앗간에서 빼다 놓았다. 부모님이 센터에 가신 뒤 거실 청소도 해 놓고, 김장김치도 새로 썰어 놓았다. 조카들 먹으라고 달달하게 황태무침도 해 놓고, 설날에 먹으라고 떡국떡 한 말도 혼자 썰어 동생네 몫으로 한 봉지 담아 놓고...... 김장김치도 챙겨놓은 지 오래다.

막내며느리가 손수 지은 저녁을 해 드린다고, 부모님을 센터에서 집으로 모셔왔다. 매생이굴국과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잡채와 굴부침을 해 드리니 부모님은 "맛 있다" 하시며 잘 잡수신다.

그런데 며느리가 해 드린 저녁을 잘 잡수신 엄마가 계속 내게 채근하신다.
"쌀은 샀냐?", "흰 떡은 언제 할 거냐?", "막내에게 깍두기랑 김치도 챙겨주거라"

열 두번도 더 들은 이야기고, '알았다'라고 열두 번도 더 대답해 드린 내용이다.

그런데 열 한 번까지도 잘 참고 있던 내가 왜, 부르르 화가 났던 것일까?
"엄마, 흰떡 해서 내가 다 썰었고, 봉투에 담아 주었고, 사골국에 떡국도 점심에 다 끓여 줬고, 김치도 새로 썰어왔잖아욧"

큰고모는 왜 아픈 할머니에게 큰 소리를 내는 걸까? 조카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듣고 있던 동생과 동생아내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테고......, 엄마는 화내는 딸 앞에서 고개만 끄덕끄덕.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자꾸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걸까? 오늘도 후회막심!
뭐냐? 나는, 입이 방정이고 그놈의 입은 마음이 근원인데 마음이 콩알만 하니 이 나이에 우아하지 못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신 안 그러마 다짐을 해 보지만, 매 번 반복하고 있으니 그저 속 상하고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