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공주 셀리 2023. 1. 19. 09:05

시어머니는 명절이 되면 한 달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셨다. 술을 빚어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놓고 보물단지처럼 다루셨고, 약과를 튀기고 수정과와 함께 감주(식혜)까지 미리미리 준비하셨다. 시부모님을 잘 모셔서 효부상까지 받으신 어머니는 몇 십 년 간의 종부경력 때문인지 음식이 맛있고 정갈하셨다. 그중에 최고의 맛은 김치였는데 어머니의 손 맛을 아쉽게도 배우지 못했다. "네가 김치까지 배우면 너무 힘들잖니" 일과 종부까지 열심인 큰 며느리가 늘 보시기 안타까워서 그리하셨던 것.

부모님을 모시고 살때는 명절이 반갑지 않았다. 1달도 넘게 음식 준비하시는 어머니와 달리 큰며느리는 한 달 전부터 명절 스트레스를 앓았다. 시장을 봐 오고 집안 청소 등 할 일이 다 내 몫이었으니 달갑지 않던 명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큰 집인 우리 집에 모이는 가족이 족히 30여 명이었으니까. 준비부터 정리까지 다 여자들 몫이어서 나는 나중에 안 그래야지 했는데......

시어미가 되고나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니 세상이치가 참 그렇다. 1월 초에 흰 떡을 빼 오고 사골국물을 만들었으니 차례준비를 이미 시작하게 되었다. 갈비찜도 재워 놓고 들깨강정도 만들고, 만두도 얼려놓았다. 내친김에 전 준비까지 해 놓았으니, 술과 과일, 신선한 채소들을 사러 시장에 한 번 더 다녀오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올 차례상에는 나박김치까지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반장님이 저장고에서 싱싱한 배추와 무를 갖다 주신 것이다. "차례 지낸다면서요. 나박김치 만들어요" 하면서, "아직 한 번도 만들어 보지 못했어요" 했더니 쉽다며 당신의 레시피를 건네 주셨다.

1. 배추와 무, 미나리, 당근, 양파, 배, 마늘, 파, 생강을 준비해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놓는다. 마늘은 간마늘을 베 주머니에 싸서 국물만 짜 내야 하는데, 오늘은 썰어서 사용하기로 한다. 냉동실에 붉은 고추가 있어 넣어 주었더니 녹색과 잘 어울린다.


2. 양파와 배는 믹서에 갈아 넣고

3. 배추김치 담을 때보다 물을 많이 부어 주어 아주 묽은 찹쌀풀을 쑤어주고,

4. 여기에 소금으로 간을 해주는데 기호에 따라 설탕을 가미할 수도 있다. 다만, 소금의 양을 넉넉히 해서 '짜다'고 느껴져야 배추 등 채소에서 나온 채수와 섞여 적당한 염도가 됨을 미리 짐작해야 한다.


5. 집안에 따라서는 여기까지 백김치로 먹는 경우도 있으나,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대로 고추육수를 내어 보기로 한다. 고춧가루에 물 3 ~ 4스푼을 넣고 불려준다.

6. 베 주머니에 불린 고춧가루를 넣어 4의 찹쌀물에 주물러 주면 붉은 고춧물이 배어 나온다.

7. 배추 등 썰어 놓은 기본 재료에 6의 재료를 부어 주면 끄~ 읕. 나박김치가 된다. 이때, 6의 양은 1의 재료 정도로 해야, 채소에서 나온 채수의 양과 합쳐져 적당한 양이 됨을 주의!

8. 실온에서 하룻밤을 재웠더니 벌써 맛 있는 향이 난다. 간을 보았더니 좀 짠듯해서 물 한 컵을 더 추가한다. 엄마집, 큰아들네 집에 나눔을 할 수 있으니 대 만족! 어머니 저도 이제 나박김치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 울 어머님. 명절이 다가오니 어머니가 해주신 약식이 먹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