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공주 셀리 2023. 1. 31. 16:53

늘 같은 날, 그런데 하루도 같지 않은 날.
소소한 일상 또한 때때로 다른 시간을 선물하더라.
오늘은 반갑지 않은 선물, 우울함이 도착했다.
대부분은 물 흐르듯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데, 오늘은 낯 선 마음에 붙잡혀 편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불멍도, 눈멍도, 익숙한 시간도 허상인 듯 딴 세상인 듯, 불안도 서성이고 생각도 계속 헛발질이다. 배는 부르고 등도 따뜻한데 말이 고프고, 사람도 고프고, 일이 고프다. 무엇보다 늘 곁에 있어서 그 가치를 잘 느끼지 못했던 동료들이 고파서 전화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아니, 힘이 빠진 마음을 애써 붙잡고 있었다.
퇴임을 하고는 바쁜 친구와 후배들에겐 가급적 자제하고 아끼던 말들을, 오늘은 아낌없이 쏟아내었다.
대부분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라서 바쁜 와중에도 들어주고, 함께해주니 모두 또 보고싶어진다.

오랜만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주변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1년이면 그리 오래 지난 시간이 아닌데도 정년퇴임을 하는 사람, 손주가 생겨 모임에 참석 못하는 사람, 제주도에 여행도 가고, 시집을 또 한 권 낸 친구가 있는가 하면 이 나이에 가정교사가 되었다는 친구까지, 참으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결같이 목소리마다 힘이 있고 생기가 넘쳐난다.

친구들과 지인들은 생기가 넘쳐나는데 설마, 그새 일이 고파진 건 아니겠지? 글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일이라면 큰 일일텐데, 재미있게 잘해오고 있는데 오늘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기력한 오전을 보내고 오후 내내 멍청히 손을 놓고 있었으니......

말 잔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지만, 때때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길을 가다가 잘 못 갈 때가 있어 적이 조심 스럽다. 그런데 오늘은 안부 전화를 핑계 삼아 말 잔치를 벌였다. 잔치에 초대 받은 이들 또한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서로 오 가는 말 잔치가 반가움이요, 위로가 되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인들로부터 힘을 얻는다. 누가 알았을까? 생기 넘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약이 될지를, 친구들의 생기 있는 목소리에 전염이 될지를......

다행이다.
하루 종일 갈 곳을 잃었던 마음이 제 집을 찾을 수 있어서, 그것이 또 어두워지기 전이어서 참 다행이다.
말 잔치 중에 최고는, 좋은 말과 아름다운 위로다. 그걸 또 오늘 선물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