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임금님
식당 가까이 위치한 장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아름드리 소나무 길을 걸어 능에 올랐다.
스산하다.
날씨는 포근하지만 햇빛이 없으니 오후인데도 잿빛 하늘이다.
장릉은 왕의 무덤이라기엔 단출한, 외관부터 초라해서 마음이 아려온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은 '비운의 국왕'으로 익히 알려졌기에 하늘에 닿을 듯한 키 큰 소나무 사이로 부는 솔바람소리도 왠지 구슬프다.


단종은 문종의 적장자로 태어났다(1441).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기였을 때 친모가 돌아가셨다. 1448년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450년 왕세자가 되었다. 비교적 순탄하게 왕세자가 되었고, 11살이 되던 해에 문종이 승하하시면서 1452년, 왕으로 즉위하였다.
11살이면 초등학교 4학년이다. 한참 부모에게 기대고 어리광 부릴 나이인데 부모 없는 고아, 단종은 외롭고 불안정한 왕이었다. 즉위 1년 반 만에 ' 계유정난'으로 사실상 수양대군이 실권을 장악하고,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났다. 문종의 부탁으로 김종서를 비롯한 믿을만한 충신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주위에 있었지만, 1456년 '사육신 사건'으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에 이어 이들을 모두 처치해 버렸다. 사육신 사건과 장인 송현수 모두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발생한 일이기에 권력에 혈안이 된 수양대군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이 되기 위해 동생 두 명(안평대군, 금성대군)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서 죽인 사람. 1457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같은 해, 작은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다. 16세의 일이다.
실록에 따르면, 단종은 목을 매 자진했다고 한다. 야사에 의하면 시신이 청령포 물속에 떠 있는 것을 '엄흥도'가 남몰래 수습하여 현재의 장릉에 안장했다고 한다.
일찍 부모를 여읜 사람,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사람, 재위 가긴이 짧았던 왕, 숙부로 부터 왕위를 찬탈당하고 비운의 죽임을 당한 임금님. 단종 임금님에게 붙여진 수식어다.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어찌 단종뿐이랴. 왕위 찬탈은 조선 시대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일비재한 사건이다. 역사의 대부분이 권력의 암투에 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건만, 단종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이 아리고, 오래된 체증처럼 묵지근하다.
우리가 아는 '단종'은 단종 승하 200년이 지난 1698년 숙종에 의해 '단종'이라는 묘호를 추증받았다고 한다.
현재 장릉에 남아 있는 다양한 유적 또한 조선 중,후기에 축조되었다고 하는데, '엄흥도 정여각'은 영조 때에, 단종대왕 제향 시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은 숙종 25년에, 한식 때 제정으로 사용한 우물 '영천' 또한 정조 15년에 축조하였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일까?
시신조차 수습하면 안된다는 것을 '엄흥도'라는 분이 수습하고 안장을 했으며, 후대의 왕들이 제단을 만들고 우물과 수라간 등을 지어 제를 올려드렸으니, 하늘에서는 천수를 누리시면 좋겠다.
잘 조성된 소나무 산책길은 이어진 산으로 길게 뻗어 있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사 덧없음을 생각하는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는데, 솔바람 소리조차 숨을 죽이고 서성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