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단비, 약비

요술공주 셀리 2023. 3. 12. 15:46

조용하던 거실에 '투닥 뚜닥' 소리가 난다. 냉장고 소리도 아니고 남편 슬리퍼 끄는 소리도 분명 아닌데, 창쪽으로 귀를 기울이니 비다. 빗소리다!

도대체 얼마만이야?
겨우 내 자주 내려준 눈은 소리 없이 쌓였고, 햇볕으로 녹은 눈물도 소리 없이 그림자만 남겨주었는데, 겨울을 헤치고 나온 빗줄기는, 청아한 소리를 내어주고 있다. 통^통^통 실로폰 소리다.

영산홍과 백철쭉을 옮기려고 파 낸 흙더미는 푸석푸석한 흙가루였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딸려 나온, 심은지 1년 된 영산홍 뿌리는, 배배 말라비틀어져 있어서 가시처럼 마음을 찔러댔었는데......
하루종일 빗소리는 나뭇가지에 우아한 왈츠를 선물하고, 대지에 달콤한 세레나데를 불러주었다.

오늘 내려준 비는 단지 소리만 들려주었을 뿐인데, 엊그제 심은 마가렡은 초록을 더하고 앞집의 자작나무엔 볼그레 물이 오른다. 대지의 신비, 자연의 조화다.
 
 



오늘 성당에서는, 수녀님의 특강이 있었다. 젊은 수녀님의 앳된 목소리가 자꾸만 작아져서 귀기울이다보니, 어느새 몰입이 되어 모범생 청취자가 되었다. 직장인이었던 그녀가 수녀원에서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생생한 체험을, 복음의 내용과 연결하여 설명을 해 주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 요한복음의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어쩐지 심쿵하고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영혼이 찡하고 울리는 느낌이다.
반모임도 참석하고, 성경 필사도 시작하고, 성당청소도 한 번 하더니 뭐야, 뭔가 깊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푸석푸석한 영혼에 한 줌 빗방울이라도 뿌려진 것일까?
 
 



물기를 한껏 머금은 대지 위에 촉촉한 눈물이 고인다. 부족함을 깨우는 빗소리를 들려주고, 목마름을 적시어준 단비가 약비임을 아는, 자연이 흘리는 감사의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