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20년 지기 보리수가

요술공주 셀리 2023. 4. 10. 14:28

손주를 보러 서울 간 날, 센터 소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오늘 두 분이 결석을 하셨어요. 무슨 일 있나요?"
"아니요, 별일 없으신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지? 두 분은 왜 노치원에 안 가셨을까?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부모님이 집에 계시니 얼른 내려와서 챙겨드려라." 했더니, 오후에나 내려갈 수 있단다. 결국 센터에서 모시고 가서 결석은 하지 않으셨으나 짧은 아침시간에 두 분은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며칠 전, 센터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풀도 뽑아야 하고, 씨도 뿌려야 하고, 센터에 그만 가련다"하셨다. 할머니가 대부분인 센터가 아버지는 재미가 없으시단다. 엄마가 만족하시니, 함께 가 주시는 것이지...... 옆에 계시던 엄마가 "난, 재미있어. 당신 안 가도 난 갈 거요." 해서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는데 결국, 일이 생긴 거였다.

"언니, 이를 어쩌면 좋아. 아버지가 글쎄......"
노치원 개근생인 두 분이 센터에 결석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아무래도 이상해서 동생이 cctv를 돌려보았단다. 아침 일찍 엄마가 뒷짐을 지고 집안을 요리조리 둘러보시다가 아버지를 부르시더니, 잠시 후 갑자기 큰 나무가 휙 지나갔단다.
"뭔 소리여? 알아 듣게 말해봐." 했더니 "엄마가 좋아하는 명자꽃 옆에 20년이 넘은 큰 보리수가 서 있는데, 보리수 때문에 명자꽃이 잘 안 보인다고 하시더니, 아무래도 아버지가 그 큰 나무를 베어버린 것 같아" 동생의 목소리엔, 화가 잔뜩 실려있었다.

엄마는 꽃을 유난히 좋아하신다. 그런데 지나친 꽃사랑 때문에 나무가 피해를 입어 동생이 늘 상처를 받는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누누이 말씀 드리지만, 엄마에겐 '소 귀에 경 읽기'다. 조팝이 필 때 주목이 가리면, 거리적 거리는 주목 나뭇가지는 가차 없이 잘려 나가고, 옥수수가 자라서 익어가는데 서부해당화 나뭇가지가 삐져나오면, 그날로 그 나뭇가지도 아웃이다. 그렇게 무참히 잘려나간 나무가 여기저기. 그나마 가지 몇 개 잘리면 다행인데, 이 번처럼 20년 넘게 함께 해온 보리수가 통째로 잘려나가는 일도 있다 보니 두 분이 밖에 나오시면, 우리는 노심초사, 초긴장을 할 수밖에......
 
"저 단풍나무는 참 잘 자랐네. 수형이 아주 멋져" 했던 단풍나무가 어느 날 반쪽이 되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아기 진달래를 단풍나무가 침범을 했다가 반이 뚝 잘려나가고, 미스김 라일락을 방해했던 조팝도 작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쯤 되고 보니 동생이 화날 만도 하다. 나무는 시간을 먹고 자라는데, 한 번 상하거나 잘려나가면 회복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엊그제 심은 홍화산사와 병꽃, 아림 꽃밭의 나무들이 걱정이 되어 동생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하는데, 엄마와 어떤 이야기로 담판을 지었는지 매우 궁금하다.
그러나....., 글쎄다.
얼마 전에도 "엄마, 황사가 심하니 밖에 나오지 마세요."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5분도 안 되어 호미를 들고 나오신 엄마다. 분명 고개를 끄덕이며 "안 나갈게" 하시던 엄마가, 이 번엔 동생 부탁을 잘 들어주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