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토라진 날이, 장날

요술공주 셀리 2023. 4. 13. 17:52

오늘은 5일장이 서는 날.
동생과 함께 장도 볼 겸 외식을 하러 나갔다.
청국장이 먹고 싶어 주문을 하면서 "청국장을 좀 싱겁게 해 주시겠어요?" 했더니, "우리 집 만의 레시피가 있어 곤란하니, 다른 걸 드시지요." 한다. 지난번에는 짠 청국장을 먹었는데, 오늘은 할 수 없이 순두부를 시켰다.
"아니, 물을 더 넣던가, 재료를 덜 넣어서 조절하면 될 것을, 어쩌고 저쩌고...",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했더니 '욱'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동생이 옆구리를 콕 찌른다. "언니, 참아야 하느니라"한다. 얌전히 순두부찌개로 식사를 했는데 부드럽고, 맵지 않아 맛있게 잘 먹었다. 그나마 '전화위복'이 되어 마음이 풀렸다.

면 단위의 5일장은 너무 초라하다. 채소와 옷가게, 생선 좌판, 신발좌판이 전부다. 그래도 오늘은 '옹기 트럭'이 한 대 더 있어서 볼거리가 있다. '오이지'를 담으려고 채소 좌판에 들렀는데, 오이는 있고 부추가 없다. "시골에선 손수 심어 먹어서, 부추를 챙겨 오지 않았다"라고 한다. 없으면 죄송하다거나, 다음에 준비하겠다고 하면 좋을 텐데 굳이 변명을 하는 사장님이 도통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되돌아 나오는데, 다른 집엔 부추가 있다. 그런데 여긴, 또 주인이 없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인이 오지 않으니, "우 씨...." 결국 싱싱한 채소는 눈팅만 하고, 마트에서 냉장된 채소를 사게 되었다.

불편해진 심기를 음식으로 달랠 겸, 저녁으로 돈가스를 먹으려 돈가스집에 들렀다.
돈가스 2인분과 쫄면 1인분을 시켰더니, 돈가스는 되는데 쫄면은 2인분만 가능하다고 한다. 왜냐고 묻기도 전에 '포장이 2인분 단위'라서 안된다고 설명하는데, 뭔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 사람이 4인분 양을 먹을 수는 없으니, 쫄면은 1인분만 해달라" 부탁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결국 먹고 싶은 돈가스까지 포기하고 돌아오는데, 이게 뭐라고 참았던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시골인심이 고약한 것인가?
도시에서는 '소비자가 왕', 시골에서는 '주인이 왕'인 건가? 
왜, 한결같이 변명이고 주인 마음대로이지?
"에이,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으이구... 쯧쯧쯧..." 하다가, "소비자가 꼭 왕이어야 하나?"에 이르렀다. 배달도 안되고, 차를 타고 나가야지만 외식을 할 수 있고, 주인이 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수요와 공급'탓임을 뒤늦게 깨닫고는 휴우, 한숨을 쉬었다. 한 박자 쉬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절이 싫으면 떠나야지".
그런데 어쩌면 좋니? 나는 아직 절이 좋은 걸......
 
황사까지 덮친 오늘, 미세먼지가 이곳 강원도까지 기승을 부린다. 뿌연 황사처럼 도통 토라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이럴 땐 노동이 약이다. 마스크를 하고 호미를 챙겨 밭으로 나간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 계단 화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잔디와 쑥대밭'이어서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괜히 시작했나? 딱딱하게 굳은 땅에 꽉 박혀 있는 잔디와, 뿌리가 깊게 내린 쑥을 캐내려고 팍팍 호미질을 하다 보니, 팔뚝이 얼얼하다. 간신히 땅을 고르고, 돌을 쌓고, 흙을 채우다 보니 어느새 부모님 오실 시간이다. 
강원도에서 새로 만든 좌우명,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서둘러 마무리를 한다.
부모님 퇴근시간이 곧 나의 퇴근 시간.
부모님 챙겨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미완성이지만 그걸 또 만들었다고 기분이 좋다. 계단 화단이 보기가 좋다.
토라졌던 마음이, 호미질에 날아갔는지, 돌 쌓으며 도를 닦았는지, 오간데 없다.
아마, 도를 닦아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