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휘 기픈 남간
'불휘 기픈 남간 바람에 아니 뮐 새...' 학교 때 배운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옛 글귀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꽃이 예쁘고 열매도 많다."는 말이다.
횡성 재래시장에서 산 붓꽃은 유난히 뿌리가 실하다. 한 덩이의 붓꽃은 1만 원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넓힌 꽃밭을 채우려면 쪼개어 심어야 하는데 뿌리를 나누었더니 무려 70여 개다.

최대한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뿌리를 갈라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제 오후에 심기 시작해서 1박 2일이 걸렸다. 아직 어린 친구지만 녹색 이파리도 튼튼해 보이고 무엇보다 뿌리가 실하다. 1~3개로 나누어진 70여 개의 붓꽃을 두 줄로 심었다. 다 심고 나서 물을 주는데 마치 2열 종대로 사열하는 애기병사들 같다. ㅎㅎㅎ 병사들 치고는 너무 귀엽다.

꽃시장에서 앵초를 구매하려는데 "우리 꺼 나눠드릴게요. 사지 마세요" 인영 씨가 만류하더니 오늘 아침에 4개를 캐다 주었다. 붓꽃의 뿌리, 반의 반도 안 되는 앵초가 잘 자라줘야 할 텐데, 물을 흠뻑 주면서 내 사랑도 담아 주었다. 뜨거운 햇빛에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지만, 금세 회복할 것을 잘 알고 있다.

심은지 3년 된 박태기를 옮기고, 특히 접시꽃을 옮기면서 느낀 것이 많았다.
박태기와 접시꽃은 키가 큰 식물이다. 특히 접시꽃은 키가 크면서 줄기가 가늘어서 뿌리가 깊지 않으면 바람을 견디지 못해 쓰러질 터......, 1년 된 접시꽃을 옮길 때 깊고 굵은 뿌리를 캐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뿌리를 보기 전에는 동글동글한 잎사귀만 보이던 접시꽃은, 볼 때마다 '깊이와 넓이'가 생각나곤 한다.
'깊고 굵은 뿌리'로 바람을 견디어 낸 접시꽃이 또 다시 예쁜 꽃을 피우고, 튼튼한 열매(씨앗)를 맺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 지극히 단조로우나 진리여서 닮고 싶고 배우고 싶다.
용비어천가 2장의 글귀가 귓가에서 하루종일 맴돈다.
내 뿌리의 깊이는 과연 얼마만큼일까? 마음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박태기와 접시꽃은 나이와 크기에 비례해서 뿌리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데 말이다. 뿌리가 깊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고 과연 뿌리가 깊을까를 생각해 보니 초라한 자신과 만난다. 나이는 어느 정도 있으나 경험도 부족하고, 지식도 짧고, 야트막한 영혼의 양식도 늘 목마르다.
재충전, 마음공부가 비어있음이다. 가난한 '자기성찰'도 문제다.
예쁜 꽃과 실한 열매는 고사하고 힘이 없이 비틀비틀......, 그래서 그림에도 글에도 영혼이 없는 것이다.
1년만 쉬자 했는데, 그 1년이 후딱 지나갔다.
마음공부를 해야하나? 마음과 육체가 하나이니 건강부터 챙겨야 하나?
뿌리가 실한 한 덩이의 붓꽃이 70여 개의 붓꽃이 되었다. 뿌리 얕은 앵초와 우연히 비교가 되는데, 나도 붓꽃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무얼, 어떻게 하면 그리 될 것인가? 생각 좀 해보렴,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