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보험
서울은 복잡하지만, 편리하고 익숙해서 좋다. 그런데 이젠 강원도가 더 좋다.
아들과 며느리, 손주와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강원도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home sweet home"이라고 외친다. 남편도 이젠 여기가 더 편하다고 한다. 손주 때문에 못 잔 잠을 충분히 채우고 동창의 햇빛을 가득 안고 일어났다. 상큼하다!
바람도 햇빛도 초록초록, "그래 이거지!" 집에 온 거다.
내가 뜯은 쑥으로 빚어온 쑥절편과 사과, 커피로 이른 식사를 하고 우리 부부는 또 '일 삼매경'. 남편은 잔디 심기, 나는 넓힌 화단 막바지 작업이다. "새싹이 나왔나?" 구경하러 나왔다가 호미를 잡았으니, 오늘도 모자 없이 맨 얼굴이다. 동쪽 햇볕이 제법 따끔하지만, '비타민 D 보험'을 들었으니 모른 체하고 계속한다. 몇 년 전, 숙모가 선물로 준 비타민D가 여기선 무용지물이다. 일 할 때 대부분은 모자를 쓰지만, 오늘처럼 이른 아침에는 일부러 온몸에 햇볕샤워를 한다.
잔디를 뜯어 내고 깔끔하게 정돈된 화단이 사뭇 섹시하다. 여기엔 안개꽃을 심을 거다. 그런데 신생아 안개꽃이 언제 커서 여기를 채워줄지......, 넓어진 화단을 채울 행복한 고민, 행복 시작이다. 나이를 먹으니 가꿀 외모도 없지만, 서울에선 외모를 가꾸었다면 여기선 자연을 가꾼다. 꽃과 나무는 다양한 색상을 가져다주고 심지어 바람과 돌조차 갖가지 표정으로 말을 붙여주니 심심할 틈이 없다.

dark brown 새집에 검정머리새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남편이 새로운 새로 바꾸어 달라고 주문한 지 2주일이나 지났다. 노란색 아크릴 물감으로 변신 완료! 햇빛샤워한 앵무새 한 쌍이 새 둥지를 틀었다.


강원도에서는 기반시설이 약해 좀 불편은 하지만, 대신 불가능이란 없다. 손으로 만지면 짜잔 하고 화단도 생겨나고, 짜~잔하면 꽃도 피어나고, 짠~하고 새도 찾아온다. 짜자잔, 노년에 찾아온 행복. 일치감치 햇빛 보험을 들어놓은 덕분이다. 신선한 공기와 청아한 바람은 보너스, 풍성한 노후생활은 보험이 기본이다. 햇빛 보험, 자연드림 보험, 그렇게 들어놓기를 참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