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는 걷기만 하라(전종호)
오늘은 랑탕 마을(3,430m)이 목표다. 고도 1,000m를 높여야 하고 대략 8시간을 걸어야 한다. 어제는 대체로 잘 잤고 아침 기분도 좋았다. 티베트 식빵에 버터를 발라 커피 한 잔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으니 출발하는 것에 문제는 없다.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 때문에 아침 식사는 대개 아메리칸 스타일로 하고, 영양은 삶은 달걀로 보충한다. 옆집에서 묵은 한국인 부부 트레커들은 이미 출발했다. 이 좁은 계곡을 언제 벗어나게 될지, 언제쯤 눈부신 설관雪冠의 히말라야를 만나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길을 나선다. 오늘의 미션은 걷는 일에만 정신을 몰두하는 것이다.
걸을 때는 걷기만 하라. 붓다의 말씀이다. 한순간에도 여러 가지 생각과 해야 할 일로 시달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 순간에 보는 것, 하는 일, 한 가지에만 깨어 있으라,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생각하고 행동하되, 그 한 가지에 주목하고 집중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른바 마음 챙김이다.. 팔정도八正道 중 정념正念의 수행법으로 불가에서는 시비 논쟁이 있는 모양이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한 번에 한 가지씩만. 단순한 이론이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간단한 원리를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걸으면서 자기 호흡에 집중한다든지 자기 내면을 세밀히 살펴본다든지, 주변의 식물이나 생명체를 깊이 돌아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속도와 높이에 집착한다. 걸으면서도 다른 문제에 잡혀 있다. 힘들어 헐떡거리다 보니 산에 온 이유를 잊는다. 산에 왜 왔지? 누가 시켜서 온 것인가? 스스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산에 들어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애써 멀리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배낭보다도 더 무거운 마음의 등짐을 걷고 있을 때가 많다. 하다못해 밥을 먹을 때도 밥 먹는 데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먹는 일에 집중하고 맛을 제대로 느껴야 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나 다음 할 일로 미리부터 분주하다. 맛을 천천히 음미하고, 음식 만든 이의 정성과 음식 재료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틈이 없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과 대화도 하지 않는다. 밥을 먹으면서도 다른 생각에 팔려있거나, 휴대전화에 붙들려 있거나, 심지어 서류뭉치를 들고 검토하고 일정표를 챙기기도 한다.
여행을 처음 계획했을 때의 목표처럼 산속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보기로 한다. 출발할 때 머릿속에 그렸던 기분 좋은 그림(quality picture)을 상상하면서 길을 가기로 한다. 여행을 할 때는 누구나 출발하기 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게 마련이다. 여행에서 만나고 싶은 어떤 한 장면. 대개는 현실과는 정반대의 그림일 것이다. 상처받은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있는 자로서의 자유와 의도적인 고독, 과중한 업무와 촘촘한 시간표에서 벗어나 늘어질 대로 늘어진 게으름과 한가함, 또는 예기치 않은 다른 여행자들과의 조우로 인한 하룻밤의 에피소드. 산에 오면서 익숙한 시간과 공간과 인간으로부터 결별을 꿈꾼다. 현실과 동떨어진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평화의 한 장면, 아름다움의 한 장면을 그린다. 예컨대 이런 것.
“그날 밤 그들은 조용한 호숫가에 앉아 야영했다. 대자연의 고요가 점차 깊어가자 랄프는 텅 빈 대성당에 홀로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는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는 마음의 평화와 환희를 얻었다(<김영도, 서재의 등산가>).”
“나는 친구들 곁을 떠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속을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치 살랑거리는 바람이나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 같았다. 수정처럼 맑고 명랑한 소리였다. 그 매력적이고 평화로운 소리에 이끌려 나는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타는 듯한 갈증도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샘물이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물은 깊었지만 어찌나 깨끗한지 바닥까지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물이 너무나도 신선해 보여서 나는 무릎을 꿇고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시기 시작했다. 물은 놀랄 만큼 감미로웠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은자를 만나고 싶은 소망도 어느덧 사라졌다. 그때 갑자기 내가 은자를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행복해졌다. 나는 샘물 옆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저만치 걸려 있는 나뭇가지를 보았다(<틱낫한,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 가끔씩 속을 뒤집어 놓은 인간관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알 수 없는 곳에서 우연찮게 부닥칠 극적인 한 장면을 꿈꾼다. 지친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는 이유는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매혹적인 풍경이나 아름다운 평화의 한 장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작은 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그 상황을 알아차리는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기쁨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한 번에 한 가지씩만 해야 한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우리는 멀티태스킹, 멀티플레이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한꺼번에, 그리고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구조 속에 살다 보니, 산에서도 그 버릇을 놓지 못하고 있다. ‘걸을 때는 걷기만 하라’는 단순한 원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걷는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와 사람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목적지만 집착하나 잡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 두고 온 나라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일들은 잠시 잊기로 하자. 서두르지 말고 오로지 기쁜 마음으로만 걷자. 자유와 평화의 시간을 나 홀로 충분히 즐기는 마음으로 걸어보자. 가다 쉬다, 마음을 챙겼다 놓쳤다 하면서 네 시간을 걸어서 고레따벨라에 도착했다. 말(고레따)도 쉬었다는 간다는 고개(벨라) 언덕! 협곡을 벗어나 대계곡이 시작되고 마침내 하늘이 열렸다. 저 멀리 랑랑리룽(7234m)이 신선처럼 허연 머리를 풀어헤치고 서 계시다. 참 기쁘고 뜨거운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눈물이 날 듯하다. 그 순간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쁨 먼저. 눈발과 바람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마음은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