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 방통
오이밭에 오이가 길쭉길쭉 ~ ♪ ♬ ♩ 노래 가사처럼, 오이가 길쭉하게 매달려 있다.
이웃에게 배운대로 남편이 오이용 지지대를 근사하게 만들어주었다. 땅 위에서 자랄 땐 몰랐으나, 지지대를 세워주고 집게로 콕 받쳐주어서 그런가? 며칠 만에 통통한 오이가 매달렸다.
신통하고 방통한 일.
오늘, 첫 수확을 했다.
풋고추와 꽈리고추는 수확해서, 이미 식탁에서 칭찬을 받은 지 여러 번. 오늘도 식탁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까슬까슬한 가시가 매력적인 오이와 첫 수확한 가지는, 내일 동생이 오면 자랑하려고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었다. 비 예보를 참고하여 늦은 저녁에 감자도 캐고, 근대와 쌈 채소를 뜯어왔다. 이 역시 동생이 오면 함께할 식재료다.
작년보다 텃밭의 모종 종류가 더 많아졌다.
오이, 가지, 고추, 당근, 토마토, 아욱, 비트, 상추와 쑥갓 등 쌈채소를 심었고, 강원도의 특산품인 옥수수와 감자도 넉넉히 심었다. 콜라비와 여름 배추, 열무와 땅콩, 노각과 브로콜리, 대파와 쪽파, 고구마는 새로 심은 작물. 참외와 수박도 아림과 아정의 체험활동을 위해 잊지 않고 심어주었다. 큰 밭이 아니어도 많게는 5 두둑을, 적게는 모종 2개인 것도 있다. 주로 부모님의 일거리를 드리기 위해 만든 텃밭이지만, 1년 체험했다고, 토마토의 곁순도 따줄 줄 알고 새싹이 많은 곳은 솎아주는 센스도 생겼다.
"호호호, 언니 얼굴이 왜 이렇게 까매졌어?"
동생의 걱정어린 놀림에도 태연하다. 거울 속의 낯선 얼굴도 이미 친근해진 지 오래. 고무줄로 질끈 머리를 묶고, 빨강 장화와 알록달록한 토시를 어깨까지 올리고 목을 가리는 특별한 모자를 너풀거리며 꽃밭과 밭을 누비고 다닌다. 장갑은 필수. 한 여름에도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호미를 벗 삼아 풀과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벌레? 작년만 해도 무서워서 피했던 지렁이가 나타나면 흙으로 슬쩍 덮어버리고, 노린재와 거미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만 있으면 만사 ok.
꽃이 자라듯, 나무가 자라듯 농사도 시간이 필요하더라.
얼굴이 새까매질수록 울퉁불퉁한 손가락 사이로 농작물도 더 튼튼해지더라.
어느날, 뚝 떨어진 외로움에 길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지만, 흙 속을 비집고 나온 새싹과 초록이 내 손을 잡아주더라.
살포시 잡은 손에 감동이 앉아 나를 미소 짓게 하더라.
올 해도 때를 못마춰 브로콜리는 꽃이 핀 걸 수확했다.
어떻게 생긴 것을 언제 따는지 몰라 나무처럼 웃자란 셀러리는 뽑아버렸고, 눈개승마 순도 시기를 놓쳐 화초처럼 흰 꽃을 피운 적도 있다. 뱀이 무서워 가능한 땅을 보지 않고 걸어 다니고 있으며, 발이 많이 달린 벌레가 나타나면, 여전히 무섭고 징그러워 저절로 36계 줄행랑이다.
그러나, 호미질도 삽질도 이젠 제법이다.
풀뽑기는 이제 선수가 다 되었고 김장도, 장 담그기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 방통!
응가냄새 나는 거름도 손으로 뿌려주는 공주출신 강원도댁이, 앞으로 얼마나 더 달라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