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수산나네 가는 길

요술공주 셀리 2023. 7. 3. 13:49

차를 가져갔어야 했다.
11시 모임이어서, 걸어서 가보자 했는데 오산이었다.
햇볕은 따갑고, 아스팔트에서 불어오는 후끈한 바람으로 숨이 막힐 지경. 초봄엔 이 길이 날마다 산책하는 곳이었는데, 한 계절 지났다고 덥고 힘든  길일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봄엔 텅 비어있던 밭에 길쭉길쭉 늘어선 옥수수가 우산꽃을 피웠고, 빨간 수염을 매달았으니, 이제 곧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수산나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수산나 집에서 성당 반모임이 있는 날이다.
반모임은 4월에 반장님 댁에서 시작해서, 벌써  네 번째 모임이다.
정년을 하고 성당 반모임도 처음이다. 반모임은 같은 동네에 사는 소공동체 모임의 성격으로, 성경말씀을 함께 나누는 형식을 취하고, 교우 간 친목을 도모하는 목적을 포함하는 것 같다.
 



처음 반모임은 낯설고, 서로 서먹서먹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성경 내용도 잘 모르는 데다 '자기 개방'이 어려워 이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었다. 그런데, 차례를 거듭하며 종교생활을 통해 겪는 갈등과 기쁨,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서로 나누다 보니, 이젠 부부 싸움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새 누구네 집엔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떤 집에 어떤 일이 있는지, 사람 사는 일이 그렇지 뭐. 하면서 서로 힘이 되고 끈끈해지는 것 같다.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나눔의 미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식적인 모임 후엔 친교의 자리.
수산나가, 직접 삶고 갈아서 만든 콩국수를 내왔다. 내가 좋아하는 쑥개떡도, 배추김치도, 심지어 후식으로 내온 블루베리까지 직접 농사짓고 손수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서울 살던 사람이 농사짓느라 참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미치자, 모든 음식이 더 고소하고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가득한 음식 덕분에 시원한 솔바람을 벗 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낸 시간이었다.
 
동생보다 형님들이 많아서일까? 농사짓는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특히 종교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내용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그동안은, 성당에서 미사만 드리고 집에 오기 바빴었는데 반모임을 하고, 야외미사와 성당 소풍, 윷놀이를 하면서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을 새록새록 알아가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몰랐던 부분이다. 그러니, 채워지려면 아직도 멀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