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정글의 법칙

요술공주 셀리 2023. 7. 7. 17:38

어쩌다 이 집에 정글이 생겨났을까?
"부지런한 사람 손 들어" 한다면, 나도 손 든 사람 중 한 명일텐데...... 꽃을 보러 갔다가 정글을 발견했다.
어제까지는 봉우리였던 큰 백합과, 족두리꽃이 피었다. 밤새 벌어진 일이다. 분명 어제는 없던, 꽃만 피는 줄 알았더니, 장맛비에 땅이 온통 풀밭이 되었다.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화단도 밭도 정글이 되어 버렸다. 

 

 
 

"아휴, 속상해"
센터에 다녀오자마자 호미부터 잡은 엄마가 1시간째 앉아 풀을 뽑으며 하시는 말씀이다. 장맛비에 잠깐 방심한 사이에 땅 깊이 뿌리를 내린 잡초가 호미로 캐내야만 없어진다고 한숨을 쉬신다. 1시간 정도의 작업량이 정말로 손바닥 만하다. 
 

 
 

감자를 캐낸 고랑에도 풀 천지고, 밭을 오가는 빈 공터엔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로 지나다니기 무섭다. 반바지를 입고 30cm가 넘는 풀 숲에서 아주 잠깐 꽃모종을 옮겨 심다가 센 놈에게 물려 병원에 다녀온 지 엊그제다. 벌레 물린 곳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가려움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지금이 독충이 가장 성할 때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반드시 양말을 신고, 장감을 끼고,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작업하라고 했다. 모자와 목을 감싸는 손수건도 꼭 챙기라며 장화를 신더라도 옷은 장화 밖으로 빼놓으라고 의사가 손수 시범을 보여줬었다. 독충에 물린 충격?으로, 며칠째 되도록 풀과 멀리하고 작업도 자제를 했었다. 
 
무계획이 계획이 된 오늘, 풀을 뽑기 시작한 이유는 날씨 때문이다.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풀 뽑기 좋은 날. 딱 오늘 같은 날이다. 
의사의 권고대로 완전무장을 하고, 풀 뽑기 시작! 아니, 풀 캐기 시작!
작년엔 풀도 공격적으로 뽑았었다. 눈에 불을 켜고, 어깨에 팍 팍 힘을 주고 뽑았었다. 날쌘돌이처럼 휙휙 보무도 당당하게 일을 하다가, 손가락 관절이 휘었고 미련함으로, 늘 무리를 했었다. 풀이 나를 괴롭히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풀과의 전쟁에서 보기 좋게 패배를 하고 나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풀이 참 밉고 또 미웠었다. 
 

 
 
그런데, 꽃(농작물)을 괴롭히는 존재였던 풀도 자연의 일부분, 초록의 한 부분이려니 생각하니 전쟁을 선포하지 않아도 되더라. 반드시 이기려고 애쓰지 않게 되더라.
 
앉은뱅이 의자에 철퍼덕 앉아 호미질도 살금살금, 세월아 네월아 풀 뽑기를 즐긴다. 어차피 오늘 다 못할 일. 오늘 뽑아도 내일 또 풀이 생겨날 터. 이젠 이 작업도 쉬엄쉬엄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오전에 30분, 해가 진 저녁에 1시간이면 족하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고 했던가? 좀 뛰면 어쩌랴? 그러나, 어울렁 더울렁 시골살이도 때로는 '반드시 해야 하는 때'가 있더라. 여름 배추를 늦게 심었더니 벌레가 배추를 다 먹어치웠고, 잠깐 방심했더니 밭이 풀로, 정글이 되었다. 그런들 또 어떠리......
 
장마철이다. 폭우라도 쏟아진다면, 잡초의 뿌리가 흙쓸림을 막아줄 터. 잡초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뭐, 정글이 되면, 고속도로를 뚫어주면 된다. 선선한 저녁 나절, 엄마와 함께 하는 호미질. 엄마는 툭툭, 나는 톡톡!  '정글의 법칙'은 조바심하지 않는 여유로움이요, 공존이 생존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