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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너머(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7. 8. 11:37

사는 게 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계획했던 대로 올라가는 게 과제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내려가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무릎이 빠질 만큼 눈이 왔다. 길이 아니라 고랑을 잘못 디디면 몸 전체가 눈 속에 파묻힐지도 모른다. 게다가 눈은 아직 그치지 않았다. 오고 가는 사람이 없기 때 문에 길 위에 따라갈 발자국 하나가 없다. 따라갈 뒷사람을 위해 눈길 함부로 걷지 말라던 선사의 가르침을 거슬러, 혹시 뒤따라올지 모를 누군가 뒷사람을 위해 내가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제부터 눈 속에서 있으면서 줄곧 사는 일이 다 이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필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하던 일이 난관에 부닥치면, 우선 난관을 해결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가 된다. 8,000 고지를 등정하기 위해 온 사람도 눈사태를 만나면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고, 어려움에 빠진 동료를 구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듯이, 평생을 두고 해온 일도, 사업도 예기치 않은 질병에 걸리면 병을 치료하고 살아남아 다시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고소 등반가들이 쓴 책에서 때를 기다리는 시간의 답답한 심정을 읽는다. 정상에 겨우 100여 미터를 앞두고 거의 다 올라왔는데 악천후 때문에 산 아래로 후퇴하고 정상으로 날씨가 돌아오기까지 산에서 길게는 한두 달씩 기다리기도 한다. 때로 술이나 마리화나 등 환각 파티에 빠져 등정을 포기하기도 한다.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산중의 군중을 멀리하고 텐트에서 책을 읽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무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예정대로 가기 위해서 더 이상 여기서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샤우지가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까지 길 안내를 해주기로 했다. 먼저 난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말 그대로 무르팍까지 푹푹 빠지는 길이다. 한 발 딛고 남은 한 발을 빼내는 것도 쉽지 않다. 설산고봉에 대한 판타지는 당장 걸어가야 하는 현실에 의해 여지없이 깨진다. 갈림길까지 안내해 준 샤우지는 돌아가고 차나 한 잔 하려고 눈 속의 롯지를 노크해 보지만 두 집 모두 문이 잠겼다. 문 앞에서 잠시 앉았다가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눈길을 오래 걸을 수는 없다.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다. 어떻게든 오늘은 싱 곰파(3330) 까지는 가야 한다.

원래 싱 곰파는 침엽수림으로 유명한 곳인데 몇 년 전에 나무들이 벼락을 맞아서 크고 굵은 나무들이 죽은 채로 서 있다. 눈 속에 새파란 침엽수와 고사목이 서 있는 모습이 신비하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싱 곰파는 말 그대로 곰파 즉 사원이 있는 마을이다. 찬단바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눈 속에 곰파는 물론 닫혀 있고 롯지도 한 곳만 운영 중이다. 추운 날인데도 땀을 흘리며 싱 곰파 롯지에 와서 짐을 부리고 커피 한 잔 마시는데, 10여 명의 네팔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자연스럽게 난로 가에 앉았던 우리는 사이드로 밀려난다. 이들도 한 팀은 아닌 모양이라 집단이 둘로 나뉜다. 식사를 하고 나서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고 하나씩 말을 건다. 카트만두에서 온 대학생들로 방학을 맞아 코인사쿤드 순례차 왔다는 것이다. 나도 목적지가 거기였으나 눈 때문에 내려왔으며 너희도 갈 수 없을 거라고 말하니 자기들은 네팔 사람이기 때문에 갈 수 있다는 대답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대학생들이 주는 술을 한 잔 받으며 이야기는 자연히 한국으로 흐른다. 네팔의 현재 정치, 경제적 사정, 왕정과 마오이스트의 갈등, 최근의 지진 때문에 발생한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을 말하며 네팔도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 한국에서 가서 돈을 벌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자연히 뒤따른다. 암울했던 권위주의 시대, 우리 대학 시절의 꿈과 좌절과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네팔의 미래도 당신들과 같은 젊은 대학생들이 앞장서 끌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에 힘이 들어간다. 어디 가도 훈장질 버릇을 버리기가 어려운가 보다. 젊은이들과 술자리를 계속하다 보면 큰일 날 것 같아 그쯤하고 자리를 비운다. 방에 들어와서 왁자지껄한 이들을 생각하며 안쓰럽기도 하고 젊음의 패기를 부러워하기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산중 폭설의 하루는 이렇게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뜨니 눈도 그치고 날씨도 순해졌다. 빵 한쪽에 커피 한잔, 어제 눈에 젖었던 옷도 가방도 깔끔하게 말랐다. 한 끼, 아침 첫 시간의 기분으로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어제 아침에 맞았던 불안은 말끔하게 가시고 상쾌한 기분으로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은 눈만 조심하면 된다. 미끄럼을 피해 살살 걸어오니 데우랄리(2625). 데우랄리는 눈도 별로 없고 마치 봄과 같다. 무슨 빨래하는 날인지 빨랫줄은 겨울 빨래가 만국기처럼 펄럭인다. 봄인 듯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다. 하루만에 겨울에서 봄으로 전이되는 전혀 다른 세상.

점심을 시키고 산 아래를 보내 샤부로베시에서 출발하는 랑탕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먼산들은 모두 설관을 쓰고 있다. 며칠 전의 일인데도 먼 꿈속의 일인 것 같다. 둔체(1960)에서 가서 하루 더 자고 카트만두에 가서 내일 저녁 비행기를 타면 여행은 끝이고 한국에 가면 또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여기 와서 10여 일이 질서 너머의 세계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질서가 이미 탐구된 세계이며 예정된 수순이라면, 여기서의 여행이 완전히 질서를 벗어났다고는 할 수는 없어도, 질서를 넘나드는 세계 속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질서의 세계 속으로 돌아가더라도 쉽게 안주하거나 길들여지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삶과 죽음 또한 질서의 세계인데, 부질없는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