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에 대하여(전종호)
어쩌다 마을 8
농촌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고령화, 인구 과소화, 이로 인한 생산력 저하와 소득 감소, 인구 이탈의 악순환의 고리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이제 이런 지경의 농촌을 포기할 것인가, 그럼에도 유지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유지를 목표로 자체 충원이 안 된다면 외부에서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이주민을 농촌으로 데려와야 한다. 결국 귀농 문제가 당장 농촌의 현안이다.
귀농인구들이 갑자기 늘은 것은 IMF 사태 이후였다. 도시에서 삶의 파탄을 경험한 이들이 농촌에서 삶의 진로를 새롭게 모색하며 농촌에서 생계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른바 탈출형 귀농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귀농인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들어왔다가 대부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도시로 유턴해 나갔다.
돌이켜보면 귀농의 형태를 몇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겠다.
1. 생태주의 귀농 : 생태주의적 자각에 의해 자연과 벗 삼아 살기 위해서 귀농한 사람들. 무주 푸른꿈고등학교 교사들과 인근 마을. 실상사 작은 학교와 인근 마을
2. 예술형 귀농 : 예술인들이 시골에 자리를 잡고 예술활동에 전념하는 마을. 헤이리. 제주 저지예술인촌, 가시리 예술촌
3. 교육 귀농 : 교육을 목적으로 한 귀농귀촌. 산청 간디 마을, 양평 조현초 주변 마을.
4. 종교 활동 귀농 : 같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귀농. 신앙촌을 비롯해 여러 종교마을이 전국에 산재해 있음
5. 농업형 귀농 : 농업을 목적으로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이주한 귀농. 진안, 장수, 부안, 완주, 홍성 홍동면 등
이러한 형태의 귀농도 자발성 측면에서 대안적 사회를 꿈꾸는 자발적 하방형 귀농과 정말 먹고살기 위해서 도시에서 탈출한 생계형 귀농의 형태로 다시 분류할 수 있겠다.
내게는 귀농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한 분 있다. 약 20년 전에 무주 푸른꿈고등학교를 방문했다가 학교 뒷마을에 살고 계시던 허병섭 목사님 댁 툇마루에서 만났던 그 학교 젊은 선생님이신데 서울에서 귀농하신 분이었다. 슬픔과 연민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믿었던 연약한 듯 강인한 분으로 기억한다. 그는 그의 책에서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변의 만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귀촌의 결심을 이렇게 썼다. "식의주(食衣住)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립적 생활 구조를 위해서라도 농촌 생활에 반듯하게 뿌리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구차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인생을 위해선 제 먹을 것은 제 힘으로 해결해야 할 테니까요. 이를 위해 농사일 외에 다른 여지를 자꾸 터놓는 것은 장래를 위해 해롭다고 생각합니다."(한상봉, 연민, 98,)
나는 귀농하는 사람들의 단호한 결심과 순수한 진정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귀농에는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가 불어
닥친다. 막상 귀농을 했는데 할 일이 없다든지, 또는 농사를 해도 먹고살 수 없다든지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고향도 참 좋고 지리산 자락 정말 좋지만, 그 두 가지 조건을 압도하는 최우선 조건은 '먹고살만한 일'이다. 집과 마을도 중요하지만 우선 일이 있어야 한다. 설마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먹고는 살지 않겠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속였다. 그게 탈이었다. 마을로 내려가서 보니 먹고살만한 일이 아무 데서나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기석, 귀농의 대전환, 25)
글을 쓰며 검색해보니 앞의 저자는 서울로 돌아와 사목활동을 하고 있고, 뒤의 저자는 농사일 말고 저술을 비롯하여 다른 일을 하며 좌충우돌하며 농촌에서 농촌과 자신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 여전히 분투 중이다.
아무튼 식량주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계속적인 농업 이주민(귀농)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텐데 농촌은 현재 귀농인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귀농인 지원정책은 선주민 농민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저항 속에 빠져 있는 가운데 농업행정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과연 우리 농촌, 농업은 소멸하고 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