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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정렬(얼라인먼트)

요술공주 셀리 2023. 7. 29. 10:01

어쩌다 눌노리 20

 

사람 사는 일이란 것이 알고 보면 다 갈등관리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정말 저 인간과 함께 할 수 없으면 갈라서고 얼굴을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어떤 인간은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서 몇 달 동안 TV를 끄고 살지 않았나?

 

그런데 그게 실상은 쉽지 않다. TV를 끄고 신문을 읽지 않아도 그들이 하는 짓이 내 감정에 영향을 끼치고 내 생활과 이해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멀리 한다고 해서 문제가 결코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마을을 만들고 마을에서 함께 살 사람끼리는 더욱이 마을을 만들어 함께 입주하는 사람끼리는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회피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문제를 드러내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개입 없이 문제는 문제대로, 의견은 의견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안목과 자세가 필요하다.

 

마을을 이룬다는 것은 공동으로 해결할 문제가 많고, 전원이 합의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선 마을 부지를 선정해야 한다. 지금 각자 살고 있는 지역과의 거리가 우선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마을 부지가 선정되고 매입을 한 후에도 단지 안에서 각자의 집터의 선정을 두고도 쉽게 합의하기가 어렵다. 단지 안에서도 유·불리한 입지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불리한 입지에 따라 대금 액수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 원만하게 합의되었다 하더라도 건축시기에 따라서 주민 사이에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건축 시기는 다 달라도 토목공사는 단지 전체가 완료되어야 하기 때문에 올해 집을 지을 사람은 문제가 없지만, 2, 3년 후에 집을 지을 사람은 생돈을 계속 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사를 정하고 토목설계와 토목시공 업자를 정하는 일 건축시공업체를 정하고 일의 진행과 감독하는 일이 뒤에 기다리고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떤 마을을 만들 것인가 하는 추상적인 문제와는 전혀 다른 구체적이고 금전적인 문제들이고 숙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서 즉시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여기까지,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왔다. 단지 안의 주택부지 선정에도 큰 이의 없이 합의하고 공동으로 부담하는 비용도 별문제 없이 지불하여 왔다. 마을에 주로 들어주는 어른이 계시고 일이 있을 때마다 주민 다모임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대표가 있어 가능했던 것으로 이해한다.

 

  

의견을 모으고 조정하는 코디네이션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고등학교 교감을 5년 했다. 학교에서 교감이 하는 주요 업무 코디네이션이다. 크게 보면, 교장과 교사,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의견, 일하는 방식,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학교도 옛날처럼 교장이 지시해서 다 되는 시대도 아니고 교사들도 고분고분한 집단이 아니다. 학생들? 순종적인 아이들이 아니라, 어떤 때는 야생의 들개들 같이 자유롭고 거침없다. 학부모들? 교육이 아니라, 자기 아이들의 이익에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민원인들이다.

 

요즘 교사들은 아이들 수업하는 일 말고도 아이들 관계에서 발생하는 고민, 갈등, 폭력, 학부모 전화, 항의, 교육청 민원에 더 바쁜 사람들이라 자기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다. 다시 말하면 교양 있고 품위 있는 교사들의 외면적 태도 속에 마음들이 부글부글 끓고 썩고 있다는 뜻이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우리 마을 주민이 교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입주하고 마을 살이를 함께 하면서 우리 주민의 내면을 보듬어 주고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훈련과 작업들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