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이 없는 건축가(전종호)
어쩌다 눌노리 2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봤다. 자폐를 가진 사람이 변호사라 이상하다는 건지, 문제 해결을 특이하게 해서 이상하다는 건지는 잘 구분이 안 되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망함 속에서, 또 한편으로는 실제 자폐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씁쓸한 느낌을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오랜만에 본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우리 마을의 건축사를 생각했다. 그는 개념이 없는 건축사다. 개념이 없다기보다는 개념을 없앴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건축하기 전에 스스로 개념이라는 것을 만들어 고정관념을 조장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다.
우리 마을의 마스터플래너는 건축사 오우근이다. 올 한 해는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우리 마을 프로젝트만 한다. 집 지을 땅을 찾으러 다닐 때도 함께 다녔다. 산세, 바람길, 물의 흐름, 마을과의 거리 등을 고려하여 지금 땅을 선택하도록 주선하였다. 나는 그와 함께 있어도 바람길은 커녕 바람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는 공학도 건축사라기보다는 미술가 풍風이 도는 사람이다. 내 주변의 친구 건축사나 책에서 본 건축사들과는 외모부터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하늘로 멀리 날아가 버리고 결론은 나지 않는다. 상상력이나 헛생각이나 백일몽 같은 엉뚱한 생각이라면 시 나부랭이를 쓰는 나도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그이의 상상력과 추론을 나는 신발 끈을 조이고 달려가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는 거친 흙바닥에 쓰잘데없는 풀만 있는 밭 위에서 다 지어진 집의 옥상에서 내다보는 파평산의 아침 모습을 상상하고,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 길을 집들이 가로막지 않고 마을길을 따라 흐르는 것을 상상한다. 마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다 모아 대규모 저류조를 만들고 이 저류조에서 마을의 내부 수로를 통하여 마을 위에 파놓은 연못으로 연결하여 다시 아래로 흐르게 하는 수변 마을을 구상한다. 나는 그의 옆에서 맨땅을 볼뿐이다.
그의 고민은 이런 거다. “자연 위에 도시를 세운다. 그 안에서 살기 위해서다. 한참을 살다가 자연이 그립다. 도시를 나와 자연으로 간다. 바람, 햇빛, 나무가 있는 곳에서 실컷 노닐다가 다시 도시로 간다. 그리워서 가는 건 아니다. 그리고는 또 자연이 그립다. 기껏 자연 위에 도시를 만들어 놓고는 자연이 그리워 도시를 나온다? 왜 우리는 자연이 그리울까? 자연에는 도시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의 편의적 속성을 최소한으로 자연 속에 앉히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농촌에서 살려면 자연의 속성 즉 추위와 더위를 어느 정도는 감당하고 살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건축에 있어서 설계가 추상적인 관념을 물질적인 실체로 전환하는 1차 과정이라고 볼 때 그 과정은 상당히 중요하다. 때로 그 작업은 많은 시간과 고민을 필요로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일관된 컨셉이 있느냐 하는 거다. 나에게는 그것을 잡고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힘겹다. 이 남모를 고민을 혼자서 끙끙 앓다가 묘책 하나를 떠올렸다. 컨셉을 갖지 않는 것이다.” 미리 설정된 컨셉을 버림으로써 고정관념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래서 아무도 하지 않는” 건축을 하려고 한다. 그가 우리 마을에 구축하려고 하는 것은 ‘물과 불과 바람’의 집이다. 적정한 일상의 건축을 통하여 최소 공간의 최대 공유, 몸과 자연이 섞인 집을 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