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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섬웨어somewhere 체험기(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8. 2. 09:22

어쩌다 눌노리 24

 

썸웨어somewhere는 서촌, 누상동 수성 계곡 가까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한옥 양옥이 결합된 적산가옥이다. 1950년대에 등기가 되어 있으나 해방 전후, 한국전쟁 전후로 행정이 제대로 정비가 안 되어서인지 건축 연도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방이 앞뒤 복식으로 배치되어 있는 걸 보면 일제식 건물 맞다. 나태주 시인의 공주 풀꽃문학관과 똑같은 구조다.

 

건축은 뭐라 뭐라 말하더라도 집을 짓는 것이다. 신축이든, 개축이든, 재축이든 대수선이든 대지 위에 새로 세우든 고치든 건축물을 올리고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건축물들은 아무리 기발하게 좋은 것이라도 건축가의 머릿속의 쉐마 상태로는 알 수가 없어 그것이 현실체가 될 때에야 우리는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대지 위에 현실체가 될 때까지는 건축가의 의도나 배려나 기획 등의 장단점을 알 수 없다. 그것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건축가들이 지어 놓은 건축물에 직접 들어가서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그런 행운의 경우가 많지는 않겠지만) 집의 경우, 그 집에 들어가서 며칠 동안이라도 살아보는 것이다.

 

건축가와 우리집 설계 2차 미팅을 딸과 함께 한 후 집에 돌아온 밤, 10시 넘어 딸이 썸웨어 예약을 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썸웨어가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딸은 설명이 필요 없는 예약이었나 보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서촌 썸웨어'를 알고 있었고, 가고 싶어 했는데 그곳이 그날 만난 건축가가 리뉴얼하고 운영한다는 사실을 미팅 후 집에 돌아간 후 뒤늦게 알고는 바로 예약하고 우리 부부에게 함께 가자고 통보한 것이다. 그래서 수성동 계곡 가까운 곳에서 하루 쉴 겸 겸사겸사 집을 고쳐지은 건축가의 머릿속 쉐마까지 살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썸웨어는 서촌 골목의 끝자락에 있었고, 전후좌우로 기존의 집들은 가장 자본주의 방식으로 매달 월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 많은 집으로 개축되어 있는데 비해서 이 집은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외관상 달라진 것은 담장을 헐고 개폐식 문으로 담장을 대체했다는 정도다. 집안의 양쪽 담장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고, 일본식 정원을 우리의 안마당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담장에 큰 거울을 걸어 거울에 화단의 식물을 반영시킴으로써 공간을 확장감 있게 보이게 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안의 주 출입구는 양옥 형태의 2층 건물에 두었지만, 한옥 형태의 곁 건물은 마루에 유리창을 단 상태로 출입을 가능하게 했을 뿐 리노베이션했다는 느낌 보다는 원래 그 모습이었던 듯 평범한 외양이었다.

 

그러나 건물의 내부 1층은 현대의 생활양식에 적합하도록 리노베이트 되었다. 원래의 구조와는 다르게 건물 뒤쪽에 있던 작은 부엌을 건물 앞쪽으로 끌어내 단아하고 규모 있는 공간(식당과 거실)으로 변신시켰고. 침실 두 개를 뒤쪽으로 배치하였다. 현관에서 바로 손님을 들이는 손님방이 실내와 분리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들어 올려 2층으로 오르는 실내 계단 옆에 놓아 둔 아담한 다실의 공간 구성은 놀라웠다. 1층에 비해 2층은 공간 구조를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오늘날 보기 힘든 적산가옥 곳곳의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구석구석 보존된 공간을 보면서 이게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는데 그 집에 오랫동안 쌓여 담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것, 보존된 것 앞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건축가의 의도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 역시 시간이 담긴 그 공간 앞에서 어렸을 적 살았던 혹은 보았던 공간과 오버랩되면서 흐르는 시간 속에 있었다.

 

 

뒷집의 축대에 바로 붙어 있는 두 개의 침실에도 빛이 차단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함과 적당한 조도를 유지하면서도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까지 건축가의 고심을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건축가 두 분이 가진 것이 많지 않던 젊은 시절에 그 집을 영끌하여 샀기 때문에 돈을 최대한으로 아껴서 리뉴얼할 수밖에 없었고, 문고리 하나까지도 자신들이 직접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오래된 문과 창을 버리지 않고 다시 보수하면서 심지어 거기에 끼워져 있던 작은 간유리( 오래되어 지금은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무늬) 하나까지 세심하게 다시 끼워 그집에 켜켜히 쌓인 시간의 흔적, 세월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오래된 적산가옥을 현대 실용적인 공간으로 리뉴얼하면서 고친듯 고치지 않은 듯, 안 고친 듯 고친 공간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런 리뉴얼 공간은 천부적인 공간적 감각없이 과연 배운 실력만으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우근 건축가의 말이다. “고향은 오래된 시간이 만든 오래된 집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들이 일군 이야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모두 이북 분이어서 고향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고향을 만들고 싶었다. 온몸으로 기억되는 집 말이다.” 그는 건축의 길을 걸으면서 삼청동 골목길에 사무실을 개소하고 서촌마을에 안착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서촌의 고만고만한 골목길에서, 어려서 태어나고 자란 골목길 안에 있던 신길동 집의 기억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좁디좁은 골목길 안의 고향집을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갔을 때 그 집은 사라지고 커다란 다가구주택이 서 있었다고 한다. 서촌도 나날이 달라지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골목길을 누비며 다닐 수 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십수년 전에 보았던 골목길 집 하나가 그 일대는 대부분 변해 있었지만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집을 지키던 노모가 돌아가신 후 빈집인 채로. 거짓말처럼 이 집이 건축가 오우근을 불렀다.(매수하게 된 사연을 들어 보면 집이 오우근건축가를 불렀다는 것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짧은 유년의 고향마저 상실한 오우근 건축가의, 온 몸으로 기억하는 고향 골목길 안의 '집의 꿈'은 마침내 부인 건축가 함은주 손에 의해서 현실이 되었다.

아내는 썸웨어에 다녀온 후 자신이 건축가에게 한 걸음 다가선 마음이라고 한다. 그 집의 모든 디테일을 마음에 들어 했다. 건축가는 리뉴얼을 마치고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6남매들을 초청하여 조촐한 파티도 했다니 시간이 흐르는 썸웨어 맞다. 가슴까지 따뜻한 건축가 부부이다 아무튼 함께 간 7살짜리 손녀가 집을 이렇게 평가했다. 손녀의 느낌이 함께 간 우리 모든 식구들의 생각이다.

 

1. (거실 겸 식당에서 엄빠와 할배 할매는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는 동안 손녀는 혼자 집안 투어를 한 모양이다. 투어를 마치고 마침내 우리를 그 아담한 다실로 불러들였다. "모두들 여기로 와 봐~" 우리를 둘러 앉힌 후 첫마디) “! 참 좋다”.

2. ( 숨바꼭질 하기 좋은 집에서 할매와 숨바꼭질하다가 욕실에서 잡힌 손녀가 갑자기 맨바닥에 누우며 하는 혼잣말) “우리 집은 호텔 같이 좋아. 근데 우리 집과 바꿀래? 그래 좋아~”

3. (자고 나서 눈 뜨자마자) “엄마, 우리 오늘 하룻밤 더 자고 가면 안 돼?”.

4. (체크아웃하고 나가서 점심 먹자고 하니) “난 이 집에서 밥 먹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