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에서 살고 싶습니까?(전종호)
어쩌다 눌노리 25
01. 사주 혹은 출생 연도 & 띠 & 이름 :
02.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란 곳(기억나는 것만 작성하시면 됩니다.) :
03. 필지 선정 이유 : 아래 항목을 참조하시어 삭제 혹은 추가하세요.
04. 이 마을에 집을 짓고 살고 싶은 이유 : 아래 항목을 참조하시어 삭제 혹은 추가하세요.
05. 내 집 내 마당에서 꼭 하고 싶은 것. : 아래 항목을 참조하시어 삭제 혹은 추가하세요.
06. 이웃과 꼭 하고 싶은 것. : 아래 항목을 참조하시어 삭제 혹은 추가하세요.
07. 꼭 실천하여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하고 싶은 아래의 6가지(가나다순)를 중복되지 않게
08. 반드시 구획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방의 개수와 화장실의 개수
09. 일단 1층 만은 최대 건축면적인 24평은 짓고 싶은지의 여부. (공동명의 부지는 1층이 48평까지 가능함으로 예, 아니오가 아닌 24평 이상의 최대 면적을 기입해주세요.)
10. 아래 4가지 중 다소 비용이 든다 해도 꼭 갖추고 싶은 자신만의 로망을 기입해 주세요. : 해당 항목만 남기고 기타 더 필요한 항목은 추가하고 나머지는 삭제하시기 바랍니다.
11.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꼭 갖춰야 할 사항 : 해당 항목만 남기고 기타 더 필요한 항목은 추가하고 나머지는 삭제하시기 바랍니다.
12. 이외 궁금하신 혹은 부탁하고 싶은 사항들을 두서없이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사항이 없으면 ‘없음’입니다.
건축가에게서 받은 설문지다. 우선 당황했다. 생전에 집을 처음 지어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집을 짓고 사는 지인들에게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당황하게 된 것이다. 집을 짓는데도 이런 설문을 하는 거야 하는 생각과 함께 집을 지으면서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뒤늦은 생각의 촉구가 따라왔다. ‘어떤 집을 지을까?’,‘어떤 집을 짓고 싶어?’는 너는 이후에 '어떻게 살고 싶은데?' 하는 질문과 같은 것일진대, 막연하게 생각하고 살았겠지만, 의식적으로 의문을 드러내고 살지는 않았다.
어떻게 살 건데? 이런 질문 익숙하지 않다. 그냥 살아왔으니까.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별생각 없이 살았다. 왜? 아파트에서 지어진 대로 맞추어 살았으니까? 삶이 집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우리 삶을 규정하고 그것에 늘 맞추어 살았으니까 이런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건축가는 집에 대해서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전원에 세워진 또 하나의 아파트가 아니라, 땅 위에 세워진 새로운 개념의 집을 상상하라고 한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살 건데? 하는 질문이 마구 후벼 판다. 설계도가 나올 때까지 10차례의 면담도 예정되어 있고 만날 때마다 집의 그림이 구체화 되고 있다. 두 건축가 부부와 우리 부부가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며 서로 알아간다. 나눈 대화와 눈빛과 숨길들이 집으로 반영되어 가리라.
아내는 열심히 생각하고 생각하여 빈칸을 채워나가는데 내 대답은 ‘특별한 생각 없음’이 대부분이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이런 질문이 계속 나를 따라왔다. 빈 답안지를 내고 나온 느낌이었다. 단독주택 형태로 산 나의 집의 원형은 부실한 시골 고향 집이 전부였다. 바스러질 듯,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쓰레트 지붕’의 아버지의 집. 처가살이에서 독립하여 지은, 월남하여 처가 동네에 정착하여 아버지 이름으로 등록된 유일한 집. 내게는 가난과 결핍의 상징의 기억으로만 남은 집. 그래도 부모 형제가 모여 행복하게 살던 집. 지금은 헐어져 대지만 남은 집. 뒤꼍의 감나무 한 그루 기억에 오래 남는 집. 그 감나무 한 그루 뒤꼍에 심고, 아내가 좋아하는 능소화 집 앞벽 가까이 몇 그루 심어야겠다.
고향집 마당에 우물가 감나무 한 그루
갈 때도 올 때도 말없이 서 있던 감나무
비 오는 날 식구들 모두 돌아올 때까지
손바닥에 떼구루루 빗방울 굴리던 잎사귀는
그리움이란 표면장력이라는 걸 알았을까
빗님이 태운 간지럼에 키드득 웃고 울다가
배꼽 같은 감꽃 안에 그리움을 감추었을까
바알갛게 서쪽 하늘에 노을이 타오르면
마음에 누군가 옛날 사람이 그리웠을까
내 고향 떠나던 날 밤에도 벙어리처럼
제 자리에 서 있던 감나무 한 그루
잘 가라 서투른 인생이여 손 한 번
흔들지 않았던 그 나무도 사랑을 알았을까
빗소리 들으며 어떤 사랑을 추억했을까
그 나무는 아직도 고향집 모서리에 서서
사랑이란 하는 것이 아니라 앓는 것이야
바람결에 겉늙은 방랑자를 위해 풍금소리
맞춰 노래 한 곡조 들려줄 수 있을까
<전종호, 그 감나무>
새집을 지으면 천창을 하나 내야겠다
가능하면 방마다 벽마다 창을 내고
더 가능하다면 유리 통창을 해야겠다
그리하여 집이 다 지어지면
방바닥에 누워 별을 보며 꿈을 꾸고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바깥을 집안으로 들여야겠다
앞산 풍경을 몽땅 안으로 들여와
달빛과 별빛 새소리와 물소리까지
모두 불러 한바탕 마을 잔치를 벌여야겠다
잔치가 끝나면
창문 아래 화단에 능소화 몇 그루 심어
창가에 기대 먼저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따신 밥 한 끼를 찾아 일 나가는 벗들을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능소화 창가에
따뜻한 등잔불 하나 걸어두어야겠다
<전종호, 능소화 피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