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공주 셀리 2023. 8. 3. 10:16

부부교사를 하는 막내 시누이가 그래도 말이 더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동병상련'을 기대했는데, 시누이가 우리 집에 오면, 늘 마음이 불편했다. 유난히 '딸사랑'이 많은 시어머님은 "설거지를 하겠다"는 시누이를 부엌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셨고, 딸에게 세숫물도 떠다 주셨다. 그러니 시누이가 셋이나 되는 나는 주말과 방학이 싫었던 때가 많았다.

오늘, 막냇 시누이 부부가 강원도에 왔다. 시누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친정이 없어져서 슬프다."고 했다. "큰 오빠가 있으니 강원도를 친정으로 생각하라"  했더니, 오빠의 안부를 물으며 자주 전화를 했었다. 작년 가을에 다녀가고 두 번째 방문인데, 오빠가 출장 중인데도 온 걸 보면 강원도를 이젠 친정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오랜만에 오는 방문인데 나도 소홀할 수 없지 싶어 애들 고모부가 좋아하는 모밀국수를 준비했다. 상추와 깻잎, 당근과 오이는 채를 썰어 놓고 노란 계란 지단과 검정 김을 썰어 김치를 곁들여 차려 놓으니 한 상 푸짐하다. 관건은 메밀국수 맛을 좌우하는 '쯔유'인데, 동생이 만들어 주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점심 메뉴로 차린 메밀국수는 대 성공이었다. 얼음 동동 띄운 쯔유육수에 고추냉이 한 젓가락을 풀고, 갖은 소를 얹어 말아먹었는데 시원, 달달, 상큼하면서 매콤한 맛이 별미였다고 한다. 애들 고모부에게도 취향저격! 성찬이었다며 좋아하니 내가 더 행복하다.

집에서 농사 지은 수박과 참외도 일품. 정성 가득 담아 내린 원두커피도 최고라고 하니, 장롱 속에 고이 보관했던 '세상에서 유일한 염색 티셔츠'도 지 알아서 걸어 나왔다. 애들 고모에겐 노란 꽃무늬 티셔츠를, 고모부에겐 엊그제 그린 베이지색 티셔츠를 선물했다.

내가 좋아하는 닭강정과 사과와 복숭아 등 과일이면 족한데, 굳이 백숙 밀키트까지 챙겨주는 시누이의 따뜻한 마음에 비하면 내 선물은 조족지혈. 오빠 없는 올케를 찾아왔다는 걸 무얼로 설명하리. 이렇게 반갑고 고마운 것을......

자주 오라, 가을에 또 오마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누이의 어깨는 언제 또 저리 굽은 걸까? '함께 늙어 가는 처지'라는 말이 실감 나니, 시누이에게 동지애까지 생겨났다.
연말에 시누이에게도 외손주가 생기면, 후후후. 엄청 자주 전화할 건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시누이 좋고 올케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