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그림

더하기 말고, 빼기

요술공주 셀리 2023. 8. 4. 13:37

사계절이 확실한 우리나라에서는 살림살이가 넘쳐난다. 옷도, 침구도, 심지어 그릇까지 계절에 따라 사용한다. 때론 정말로 필요해서, 때론 충동적으로 구매한 갖가지 살림살이를 비우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아까워도 과감히 버릴 용기를 내서, 실행에 옮겼다. 채우기가 쉽지, 비우기가 어려운 걸 염색에서도 실감한다.

아침에 시작한 티셔츠 염색이 여전히 미완성이다. 염색물감으로 그리는 티셔츠는 대부분 열처리까지 반나절에서 한나절이면 되는데 검정색 티셔츠에 '탈색기법'으로 시작한 오늘 작업은 더 빼내야 하는데도 효과가 더디다. 초록색 티셔츠와 베이지색은 손쉽게 완성했는데, 탈색이 쉽지 않아 락스를 자꾸 덧칠하다보니 겁이 벌컥 나는 작업이다.
 

 

 
 
영국여행을 한 친구에게 선물 받은 귀한 티셔츠를 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락스원액을 붓에 묻혀 탈색을 시도했는데 검은색이 붉은 밤색으로 변했다. 한 번 더 붓칠을 해도 여전히 브라운. 여러 겹의 락스를 칠하다 보니 천이 상할까 겁이 나는 것이다. 건조하는 시간도 꽤 걸리고, 흰색이 될 때까지 덧칠을 하려다 우선 멈춘다. 옷감이 상하면 안되니까.
 



그러나 이젠 멈출 수 없는 일. 그림에 꽃혔으니, 물감을 칠하고, 락스를 덧 바르고, 작은 붓으로 그렸다, 큰 붓으로 그렸다를 반복한다. 락스를 뿌렸더니 재미가 있다. 고흐의 '밤의 카페'가 떠올라 물감을 입혔다, 락스로 탈색했다를 반복해서 겨우 완성한 그림.
'밤의 정원'이 탄생했다.
 

 
 
지독한 락스 냄새 때문에 야외작업을 하는데 바람도 뜨겁다. 
그래도 붓질이 재미 있으니, 등에 땀이 나는 건 호사다. 오랜 시간과 땀으로 완성한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의 정원'이 티셔츠에 들어왔다. 내 마음에도 언제나 함께하는 꽃과 나무와 하늘과 별.
이제, 흰색 천이 아니어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더하기보다 빼기를 해서 얻은 쾌거. 하루 종일 씨름했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