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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잃은 자가 하수다(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8. 9. 09:24

어쩌다 눌노리 31

 

성토를 둘러싼 갈등과, 이후 토목 시공업자 선정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은 시간 낭비와 함께 우리 주민 모두에게 속상함과 화는 물론 심리적 혼란을 초래하였다. 집을 지어 함께 살면서 같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이 작은 단위의 우리끼리만의 마음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마음이어야 할진대, 이런 작은 다툼을 통해서 누군가와 적대적 감정을 갖는다든지, 나를 또는 우리를 방어하기 위해서, 우리가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나아가 남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업자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향해 우리끼리의 마음의 울타리를 쳐야 되는지,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새로운 마을을 만들려는 이상에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자괴감이 드는 것이었다.

 

건축을 직접 한 사람들이 쓴 책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업자들과 갈등을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업자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건축주를 어떻게 속이고, 이 속임수에 대응하기 위해서 건축주가 어떻게 지혜롭게 처신해서 손해를 만회했는지, 아니면 덜 속았는지에 대한 영웅담 같은 이야기들이다. 집을 지은 경험이 있는 주변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결국 같은 소리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는 건축 현장에서 자신은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여러 번의 경험으로 자신이 직접 지어주겠다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그럼 이 사람도 나(우리)에게는 업자인데 믿어도 될까?

 

우리는 건축주(우리)- 건축사- 토목 시공업자와 건축시공업자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하게 되는 우리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점점 남을 불신하고 강퍅해지는 마음을 달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끼리 신뢰하고 서로 부조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대안마을을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업자를 보는 시각 자체도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내 행동이 달라지는 대응적인 행동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큰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믿는 가운데 토목(건축) 과정을 논의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토목업자를 선정하고 계약하고 나서 업무를 총괄하는 회사 전무님을 따로 만났다. 그냥 내 패를 먼저 보여주기로 했다. 성토하는 과정에서 시작한 문제부터 역구배 설계와 토목 시공업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을 솔직히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토목시공과정에서의 협조 관계를 논의했다. 전무님도 처음 성토를 담당했던 회사의 업계에서의 평판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주었고, 이렇게 한 업체가 맡았다가 물러난 현장을 새로 들어가서 업무를 새로 수주하지 않는 것이 토목업계의 관행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대개는 이런 경우 불리하고 못마땅해도 업자에게 물려 진행하는 것이 보통인데. 손해를 보상해주면서까지 업자를 바꾸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주 드물다는 이야기도 했다. 업자의 일하는 방식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도저히 맞지 않아서 손해를 보면서까지 업자를 바꾸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상호 협조 관계를 다짐하였다. 일테면 조건 없이 잘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평생 학교에만 있었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업계의 관행과 일 처리 방식은 새로 배울 것은 배우고 거부할 것은 거부하면서 가기로 했다. 앞으로의 상황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집을 지으면서 마을을 조성하면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감당할 수 없는 태풍 같은 것이 아니라면 크고 작은 풍파는 넘으면서 가야지 하는 생각이다.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안전기원제(고사)를 치르면서 모아진 돈을 토목회사 전무님에게 전부 드리면서 직원들 술 한 잔 크게 사드리라고 했다. 고사를 드리고 그다음 날부터 무정하게도 거의 보름 동안 엄청난 비가 쏟아졌지만, 비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비에도, 업자들에게도, 외부의 모든 요인에게도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평상심을 잃는 자가 하수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면 일도 우리의 방식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노자의 말처럼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