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다'는 말(전종호)
어쩌다 눌노리 48
8차 미팅은 다른 건축주와 건축사 두 분, 그리고 시공을 맡기로 한 빌더들의 조합 팀장과 함께 가졌다.
설계도면은 거의 완성되었고 결과는 흡족했다. 시공업체들의 공사 현장과 완공된 집들을 돌아보면서 공간 감각이 생겼다. 머릿속에서만 그려왔던 공간이 짓고 있는 현장에 몸이 들어서자 느낌이 달라졌다. 꿈을 꾸며 자다가 갑자기 깨어나는 순간 같다고 할까? 그래서 얻은 것은 공간에 대한 필요와 불필요의 균형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건축사와 미팅을 하면서 공간들이 조금씩 더 좋아지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아무나 설계를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침실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잠만 자면 되는 공간이라며 우리는 소홀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침실을 건축사가 제안한 곳이 아니라 북동쪽에 두자고 했다. 대지로 치면 맹지와 같은 곳이다. 맹지 같은 곳에 제안했기에 설계사에게 크게 기대하는 그림은 없었다. 어쩌면 침대만 놓이게 하면 오우케이 할 셈이었지만 설계사는 유독 침실 공간을 여러 번 수정하셨다. 그만큼 고심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맹지를 맹지가 아니게 만드셨다! 동쪽으로 고측창을 내어 아침 햇살이 들어올 수 있게 하였고, 맹지에 바람 길이 될 생각지도 못한 곳에 문을 냈다. 알코브의 위치도 살짝 바뀌었지만, 공간이 더 아늑해졌고 동선으로 인한 공간 확보(건축주의 평면도 영역을 넘어 건축가의 3D 능력)까지 되었다. 중문의 위치도 바뀌었는데 이것도 기막힌 발상이었다. 현관에서 들어와 신발을 벗고 중문으로 들어가기 전, 오픈된 세면대 위치에 창을 두어 빛을 들이는 공간을 만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마 이 공간에서 밝고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햇살의 그림자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밖인 듯 안인 공간, 안인 듯 밖인 공간이 될 것 같아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보일러실은 신발장 뒤편으로 두면서 문을 외부에 따로 두었다. 비록 신발장의 공간이 작아졌지만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많지도 않은 신발이지만 버릴 신발을 더 찾아야겠다.
▶건축시공을 맡은 빌더 팀장과도 계약했다. 대략적 내용은....
-계약서 작성함
-10/4일경 건축착공 신고 예정임
-시공업체는 건축주와 카톡방 2개를 개설 예정임(소통방+시공 청구비)
-시공 청구비는 2주 단위 예정이며 지금껏 경험에 의하면 대략 1,000만 원 정도씩 청구됨
-식비와 간식, 물, 회식비 등을 합해서 1일 1인 약 26,000원 청구 예정임
-계약금은 공정 관리비(평당 30만 원), 공사비는 시작 후 2주 단위로 청구 예정
-숙식: 장파리 쉼터 (공사팀 중 집이 먼 경우도 있으므로 계속 사용해야 함, 비 오는 날 식비는 청구하지 않음)
-지음은 시공에 들어갈 상세도면과 3D를 시공 들어가기 전에 건축주에게 제공할 것임. 건축주가 직영으로 건축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므로 건축사, 건축시공사가 가지고 있는 상세도면을 갖고 확인해 가는 과정이 필요함
우리는 현장소장으로서 건축주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건축주가 현장에 자주 올 것. 매일 올 수는 없지만 최소 2~3일 1회 정도는 현장에 와야 소통이 원활해지고, 자재 등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어 공기를 단축할 수 있다.
‘짓는다’는 말이 이제 머리가 아닌 몸의 행위 영역으로 이전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