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의 현장 단상 : 기초/ 물성의 느낌(전종호)
어쩌다 눌노리 55
땅을 파고 철근을 심고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기초 공사를 날마다 와서 본다. 땅속이 파헤쳐지면서 붉은 흙이 주변에 쌓인다. 특별나게 볼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틀이 멀다 하고 현장에 갔다. 가을이라 파평산 산색이 좋았고 눌노리 바람과 볕이 좋았다. 철근은 엿가락처럼 가지런히 공사장 한쪽에 놓여 있다. 철근을 이렇게 유심히 쳐다본 것도 처음이다. 철로 만든 기다란 꼬챙이 그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기초 공사에 가로 세로로 눕혀지고 세워지며 서로를 묶기까지 하는 모습에 묘한 힘을 느낀다. 철근의 힘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 약간 녹이 슨 것조차 물감 붓칠을 한 듯 느껴지는 착각. 착각의 아름다움이다. 콘크리트도 마찬가지다. 20여 년은 족히 넘었을 과거에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처음 보고 탄성을 뱉었던 적이 있다. 상처를 수정하지 않은 거친 표면에서 알 수 없는 따뜻한 감성이 내게 밀려들었다. 그 후 많은 건물에서 노출콘크리트를 보았지만 여전히 내게 매력 덩어리였다. 왜일까? 철근도 노출 콘크리트도 가공하지 않은 자체의 물성이 그대로 전달되어서일까? 집 경계석 안쪽 바닥 면적을 잡은 기초에서 거푸집을 떼어내고 드러난 콘크리트가 노출된 거친 벽면에도 역시 아름다움을 느낀다. 며칠 전에 타설 했지만 오래전 만들어 놓은 듯 시간이 묻어난다. 노출 콘크리트의 물성에서 시간이 묻어나고, 집의 골조인 나무 안에도 시간이 있고, 그 안의 공간에 사는 사람들도 시간을 살고...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보는데 현장은 잠시 커피 타임인가 보다. 일하시는 분이 건네는 믹스 커피를 흙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받아 마신다. 믹스 커피가 오래된 시간을 불러왔다. 30년도 더 된 일... 출근하자마자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던 기억. 내겐 일과 시작 전 워밍업이었다. 이것도 집 짓기의 워밍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