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서울 손님 3

요술공주 셀리 2023. 9. 2. 10:32

7월에 온다더니, 8월로 연기. 8월도 펑크를 내길래 아, 못 만나겠구나 했다. 홍실장님만 상중이어서 못 내려오고 세 명이 온다는 연락이 왔다.
2박 3일 내내 메리골드 꽃차를 만들고, 홍고추 효소를 담고, 요리교실까지 잡힌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무리를 했는지 허리가 또 말썽이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있어도 '우선멈춤'.
허리를 위해, 주천강 산책로를 걷고 가능한 자주 누워있었다.

손님맞이는 대청소를 한 게 전부.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약 치지 않은 '청정 고추'를 따서 포장해 놓았다. 적당히 약이 올라 달달하고 매운 고추가 늦더위 입맛을 잡아줄 거다.
11시 도착예정이라더니 주말이어서, 늦어지는가 보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내려오느라 다들 시장하겠다 싶어 급히 '라따뚜이'를 준비한다. 가지, 호박, 토마토 모두 다 따다 놓았으니, 이럴 때 라따뚜이가 제격이다. 오븐에서 맛있는 냄새가 날 때쯤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버선발로 뛰어가 부둥켜안는다.
눈 만 뜨면 학교에서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이다. 여전한 목소리, 그리운 얼굴들이다.
오랜만에 옛날처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랄 것 없이 학교 이야기, 교육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 내가 이랬었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지.
고향 같은 곳, 어쩌면 지금 돌아가도 내 몸에 딱 맞춤옷이 될 것만 같다.

그런데 함께 일할 때야 상사로, 선배로, 동료로 서로 힘이 되며 잘 지냈지만, 지금은 모두 흩어져 새 근무처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금쪽 같은 주말에 퇴임한 사람 보겠다고 멀리 강원도까지 내려와 준 옛 동료들을 나는 어찌해야 할까? 냉장고를 다 털어준들, 밭의 곡물을 다 내어준들, 이 고마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다시 올게요." 하며 올라갔지만, 차마 "그러자" 하지 못했다.
"알았어요. 조심해서 가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건승하시고, 여기 내려올 시간 있거들랑 아이들 교육에 더 힘 쓰고, 자기 관리에 더 투자하면 좋겠습니다."
뜨거운 그리움은 아니라 하고, 마음 깊은 곳 차가운 이성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 사진이라도 함께 찍었어야 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