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
"언니이~~~"
2주 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다. 회갑 기념 여행을 다녀온 옥이가 호박죽을 갖고 찾아왔다.
"언니가 준 씨앗으로 키운 단호박으로 만든 거예요." 최애 하는 호박죽인데, 직접 농사지은 작품이라니 무조건 맛있을 게다.
"근데 언니, 종0 언니가 고구마 줄기 따러 오랬어요."
고구마 줄기라......,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해 준 반찬을 먹어 본 기억이 있는 그걸까? 기대를 하고 종0형님 댁으로 갔다. 옥이가 먼저 시범을 보인다. "이파리 목 부분을 톡 분질러서 껍질을 벗겨내면 돼요." 하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손으로 일일이 벗겨내는 일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앉은 자세도 불편하고, 단순노동도 쉽지 않다. 그나마 여행 다녀온 이야기, 추석 때 생긴 시댁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벗겨내는 고구마 줄기는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니 은근 재미가 있었다.
세 여자의 수다와 끈기로 완결된 고구마 줄기 껍질 벗기기는 어느새 마무으리.
그런데 손바닥과 까맣게 물든 손톱은 어찌할고? 비누칠을 해도 검정물은 한동안 벗겨지지 않던데......
집에 오니 12시가 다 되었다. 시장기가 돌지만, 처음 시도하는 고구마 줄기 볶음이 식욕을 자극하니 물부터 끓인다. 끓는 물에 고구마 줄기를 삶아 내어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삶은 고구마 줄기를 얹으니 치그르 치그르, 고소한 들기름 향과 낯익은 소리가 들린다. 엄마표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다진 마늘과 송송 썰은 파를 넣고 한소끔 끓여주니, 점심 반찬이 뚝딱 완성되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 준 낯익은 맛이다. 얼추 흉내는 낸 것 같아 또 뿌듯하다. 남은 고구마 줄기는 냉장고에 보관했다. 주말에 부모님께 해 드리면 좋아하시겠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요리를 하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두루 찾아보았다. 눈이 가는 키워드, '고구마 줄기 효능'을 열어 보니, 대박! 고구마 줄기가 보물이었네. 세상에, 흔하디 흔한 고구마 줄기 효능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오늘, 해 먹지 않았다면 큰 일 날 뻔!
고구마보다 비타민c가 4배가 많고, 칼슘은 우유보다 10배나 많으며 비타민a, 칼륨, 섬유질, 카로틴, 클로르겐산, 루테인, 식이섬유, 베타카로틴 등이 두루 함유되어 있단다. 몸속의 유해한 노폐물과 염증을 외부로 배출하는데 뛰어난 효능이 있을 뿐 아니라 빈혈 개선 및 예방, 항암 효과, 면역력 개선 및 심혈질환 예방, 눈 건강, 장 건강에도 좋고, 뼈 건강에도 좋단다. 심지어 피부미용에도 좋다니, 땅에서 나는 보물이 이 보다 좋을 수 없을 정도. 난, 오늘 노다지를 발견한 거네.
어릴 때. 그리고 서울 살 때, 시골 사는 어른들이 로컬 음식이 최고, 제철 음식이 최고, 땅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이 최고라고 말할 때, 나는 건성이었었다. 잘 먹지 않는 채소와 나물을 먹이기 위한 어른들의 트릭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자연인이다'와 각종 건강 프로그램에서나 소개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골에 살아보니 이제야 실감하고, 이제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손톱이 까매지면 어떻고 손가락이 좀 휘어서 손구락이 되면 어떤가? 시골살이는 발품과 노동 없이는 되는 일이 없지만, 그래서 좀 힘들면 어떤가? 얼굴은 까맣고 그을린 피부가 예쁘지 않은데, 시골 할미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건강한 피부를 자랑삼아 보무도 당당하게, 건강한 노년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