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거나, 부족하거나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오셨으니 울 아가들은 얼마나 예뻐졌을까 싶어 정원에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선선한 아침에 이미 풀을 한 판 뽑은 뒤다. 핑크뮬리를 살리려고 무성한 말채나무 가지를 전지 하다가 또 풀을 뽑고..... 서서 하는 일인데도 땀이 송골송골. 좀 쉬어야지 하며, 부모님 집에 다녀오다가 그만 또 주저앉아 맨 손으로 풀을 뽑는다. 그렇게 시작한 풀 뽑기는 한 시간여를 더 하다가, 투둑투둑 빗방울 때문에 겨우 멈췄다. 워 워, 우선멈춤. 이제 그만! 오늘 노동은 이미 한도초과다.
비가 온 어제는 하루종일 잉여 생산된 호박과 가지를 처리했다.
호박과 가지를 도톰하게 썰어 건조기에 돌려 나물을 만들었다. 햇볕에 한 번 더 말려주면 최상이겠으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니 꼬들꼬들 건조기에서 말린 나물은 냉동실 행. 이제, 언제든 꺼내서 나물 볶음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작년에도 콜라비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길게 줄기만 자라서 버려야했는데 올 역시 비슷한 상황. 비트도 튼실한 뿌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과(apple)와 비트, 당근(carrot)을 갈아 abc 주스를 만들어 먹으려 착즙기까지 준비했는데, 당근은 많고 비트는 부족하다.
부족한 비트, 넘치는 노각.
부족한 마늘, 넘치는 대파.
부족한 땅콩, 넘쳐나는 동부. 참 재미있는 농사다.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세상 사는 이치도 그렇더라.
부족한듯 적당히, 과하지 않은 듯 넘쳐나지 않게 조절하는 '중용의 도'를 지키고 찾아내는 일이 제일 어렵더라.
부모님 모시고 살 때는, 명절이면 30명 정도의 대가족에게 음식을 대접했어야 했는데 이 번 추석엔 아들, 며느리만 내려온다고 한다. 남동생은 뉴질랜드에, 여동생은 중국에 있으니 울 부모님은 또 어찌할꼬? 연휴 내내 부엌에서 서성일 때는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딱 하루만 쉬다 오면 좋겠다 했는데, 시골 와서 살아보니 또 사람이 그립다 하고 있더라. 이 또한 넘치거나 부족하거나......
한 곳이 부족하고, 한 곳이 넘쳐나면 그나마 다행. 부족한 것만 있지 않으니 참 다행이다.
이 쯤 나이를 먹었으니 욕심과 미움은 부족하게, 사랑과 나눔은 넘쳐나게, 그걸 가능하게 하고 싶은데.
언제나 내게, 그럴 날이 오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