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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사슴

요술공주 셀리 2023. 9. 16. 15:00

얼마 전, 사슴 한 마리를 집에 들였다.
엄마 사슴은 빼어난 몸매에 미끈한 목선이 마치 미스코리아 같다. 비 맞는 모습이 안타까워 데크로 데려왔는데, 풀 숲에서 하루 비를 맞더니 곰팡이가 생겨, 데크에서 피신 중이다. 자연에 있어야 할 사슴이 데크에 있다니, 이건 또 아닌 것 같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풀숲에 편하게 있어야 할 사슴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은  남편과 함께 아들 사슴을 만들기로 했다. 엄마 사슴이 잘 관리한 청담동 출신이라면, 아들은 자연스러운 숲에 어울리도록 터프하게 만들어야겠다.

며칠 전 문0 씨 집에서 미리 얻어온 나무를 이리 대어 보고 저리 붙여보다가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톱질을 했다. 가능하면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살려서 뚜덕뚜덕 거칠게 만드는 게, 나무 사슴의 목표다.
 



사슴의 머리와 뿔에 사용할 나무를 자르고 목과 몸통, 다리를 만들 나무를 골라 대충 길이를 맞춰보니 그럴싸한 동물 모양이 생겨났다. 이제, 못을 박을 차례. 그런데 대충 하는 작업이라고 못만 박으니 이어진 부분에 틈새가 생겼다. 작업은 다시 원점. 목공본드로 꼼꼼히 접착을 시킨 후, 다시 못질을 해서 머리와 다리, 꼬리를 차례로 이어 붙이니 투박한하지만 점점 사슴의 모양새가 되어간다.
 

 



그런데 다리를 붙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처음엔 뚜다닥 만들려고 했지만 네 개의 다리를 세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뚜닥뚜닥 만들다가 결국 뚜두다닥 뚜두다닥. 얼르고 달래 가며 엄마에게 걸어가는 애기사슴 한 마리를 간신히 완성했다. 반나절 일이 한나절을 훨씬 넘겼지만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또 남편이 해내고야 말았다.
 

 

 

 
열 일 한 남편이 완성하면서 하는 말.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어디든 바라볼 수 있도록 머리는 360도 회전이 가능해."
울 남편, 역시 목공의 귀재다. 세워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투박한 머리와, 통통한 엉덩이를 살짝 비튼 몸통이 너무 귀엽다. 게다가 마치 걸어가는 듯한 네 다리는 애기 사슴의 포인트. 요리 보고 조리보아도 내 사슴, 오늘은 엄마와 아들이 함께 있으니 둘 다 행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