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수세미 사랑

요술공주 셀리 2023. 9. 23. 12:52

며느리가 그럴 줄은 몰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가 어떻게 천연 수세미를 사용할 줄 알았을까?
내 며느리로 두 번째 강원도에 내려왔을 때, "아가, 이 수세미 내가 키워 만든 건데 한 번 써볼래?" 설마, 네가 이걸 알까라는 마음으로 내민 수세미를 본 며느리는 "어머나, 이 귀한 걸 직접 만드셨다고요?" 하며 좋아라 했었다. '귀한 것'을 알아본 며느리가 놀랍고, 얼마나 기특하던지...... 게다가 "어머니, 내년엔 수세미 많이 만들어 주세요."라며, 시어미가 만들어준 수세미를 애지중지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보고 있어도 사랑스러운 이 며느리를 어찌 이뻐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세미를 처음 심은 것은 3년 전이다. 시골 풍경으로는 수세미만 한 것이 없으니, 이 때도 모종을 사다 심었었다. 관상용으로 심었지만 꽤 큰 수세미가 열렸었다. 튼실한 수세미가 열렸지만, 어떻게 수세미를 만드는지 몰라서, 저절로 떨어져 썩어버렸다. 그러던 수세미가 윗집 이웃 덕분에 빛을 발한 건 작년이다. 잘 익은 열매를 끓는 물에 푹 삶아, 씨를 빼내서 말리면 하얀 속살이 예쁜 천연 수세미가 된다. 수세미는 며느리가 사용했고, 나는 썰어 말린 수세미와 생강, 무 등을 넣고 겨우내 차로 달여먹었었다.
 

 

 

봄을 기다려, 5일장에서 모종을 사다 수세미를 심었다. 작년엔 두 그루, 같은 장소에 올핸 세 그루를 심었다. 그런데 달랑 4개만 달렸다. 두 그루 심은 작년보다 양도 적고 크기도 작으니 며느리와의 약속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수세미는 소화도 잘 되고, 기관지에 좋으며 감기 예방, 피부미용까지 효능이 있다고 한다. 생강과 꿀을 가미하면 겨울차로는 단연 최고다. 많이 열리게 해서 차도 만들고 수세미도 만들고자 했는데, 이 양으로는 택도 없으니 이를 어쩌랴? 추석에 내려와 수세미를 보고 좋아라 할 며느리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 장에 가서 사 와야 하나? 이웃에게 얻어와야 하나? 
수세미 사랑도, 며느리 사랑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