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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의 현장단상 : 설계사의 눈과 시공자의 손(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9. 25. 09:26

어쩌다, 눌노리 78

 

에피소드 1

 

어느 날 현장에 갔는데 현장 소장이 나를 불렀다. 거실의 페티오창의 높이가 1,800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200~400까지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아파트 거실 창의 높이가 2,100이니 조금 더 크게 해서 전면의 뷰를 더 확장해 보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더 높게 해서 전면의 뷰를 키울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설계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현장 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침 그때 건축가가 현장에 왔다. 현장 소장과 나눈 이야기를 하니까 건축가는 자신의 설계 의도를 설명했다. 우리는 대부분 모든 천장 높이가 같은 아파트 혹은 아파트와 비슷한 형태의 집합 주택에 살고 있어서 그 공간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짓는다면 전원에 또 다른 아파트를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아파트 형태의 집을 도시가 아닌 전원에 옮겨 오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우리 집의 거실은 작아서 밖에서 보면 크지 않은 페티오창이지만 집안에 들어오면 천고가 높아지면서 예상했던 공간 크기감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 출입구의 현관도 매우 작고 좁지만 천고가 높다. 작은 면적이지만 꼭 필요한 공간들을 배분해야 했고 그 여러 공간을 나누면서 천고를 달리해서 다양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게 설계했다는 말이다.

 

한국인의 60%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한다. 건축법과 주택법에서 정하는 최소한의 천정고 가이드라인은 2,100이라고 한다. 천장의 높이가 사람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 결과를 읽은 적이 있다. 실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낮은 천장 공간에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잘 해내고, 높은 천장 공간에서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을 더 잘 해냈다는 것이다. 모두 다 똑같은 천정고의 공간에서 느낄 수 없는 다양한 수직적 공간감과 수평적 공간감을 느낄 수 있게 설계한 것이라 생각된다. 공간의 질과 밀도에 대한 건축사의 철학이 묻어나는 답이었다. 우리 몸에 익숙한 공간 도면이 아닌 건축사의 도면은 분명 보편적인 공간보다는 작지만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깊이가 있는 공간의 설계이고 또 그런 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