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의 현장 단상 : 데나우시!(전종호)
어쩌다, 눌노리 81
우리 집 침실은 토지로 말하면 맹지와 같은 곳이다. 나는 보통 침실을 배치하는 자리에 부엌을 두었다. 내가 선택한 위치여서 침대만 들어갈 정도면 오~우케이 할 생각이었고 큰 기대도 사실 없었다. 그런데 그 공간을 건축사가 유독 공들여 설계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침대 머리맡으로 계단이 지나는 공간인데 이 계단을 아마 다른 각도로 설계한 모양이다. 설계도면을 봤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건축사는 이 부분을 시공할 단계에서 현장 소장에게 상세도면을 특별히 더 자세하게 설명했었고, 시공 후에 결과를 사진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들은 현장 소장이 시공하는 목수에게 전달하고 다른 볼일을 보기 위해 현장을 비웠다. 결국 탈이 났다. 현장 소장은 분명히 목수에게 전달했다고 했는데, 시공한 목수는 도면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계단이 만들어지자 나는 기분 좋게 다락에 올라가 보고 집이 완성된 듯 그저 좋아했을 뿐, 계단에 문제가 있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침대 머리맡이 계단 밑이라 공간이 눌렸지만 '원래 그런 위치였으니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열악한 공간에 윤택함을 입히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디자인이 무너진 것이다. 건축사가 데나우시! 를 외쳐야 하는데 뜯어낼 부위가 계단 전체이다 보니 건축사의 고민이 깊어졌다. 건축사가 설계와 감리를 병행하다 보니 데나우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데나우시'는 시공업자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로, 처음부터 다시 해라를 뜻하는 건축현장의 일본말 잔재다.
어느 날 건축사는 직원을 현장에 데리고 와 그 공간을 다시 실측하고, 어둑할 때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컴퓨터로 직원과 함께 여러 번 그 공간만 다시 디자인하는 것을 보았다. 먼저 현장을 떠나 집에 돌아온 나는 딸과 전화로 현장의 진척 상황을 말하다가 이 이야기를 곁들여했다. 집을 먼저 지어 본 딸은 이 말을 듣고 '대박!'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디자이너(건축가)와 시공사끼리는 0.5cm 가지고도 심각하게 다툰다’고. 그제야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눈치채게 되었다. 오차가 무려 32cm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건축가는 건축주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도면과 시공의 오차를 두고 며칠간 고심했다고 한다. 그 고심 끝에 새 디자인으로 문제를 해결해서 내게 보여 주었다. 사실 그냥 두어도 어쩌면 나는 오케이 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프로답게! 해결한 것이다. 새 디자인을 찍어 딸에게 카톡으로 보냈더니 이런 답문이 왔다. ‘멋짐!!!’ 침실이 맹탕에서 샤방샤방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는 도면대로 시공하지 않은 목수가 실력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단만 보면 전혀 문제가 없다. 성실하고 실력 있는 시공자들이다. 다만 도면을 제대로 보지 않고 계단 만들기의 익숙한 방법대로 했을 뿐이다. 우리는 다행스럽게 계단만 편하게 된 것이 아니라 맹탕 침실이 사방샤방 분위기로 바뀌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잘은 모르지만 조명도 비슷한 경우일 것 같다. 우리 집 조명이 유난히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평범 일색이 아니어서 전기업자가 조금 낯설어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시공해 왔던 익숙한 조합과 스타일에서 벗어나 몇 군데 조금 더 세심한 디테일을 요구하자, 손바닥만 한 집에서 ‘굳이’, ‘꼭 그렇게’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익숙해서 편리한 방법대로 하지 말고 상세 도면대로 시현해야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현장에 갔는데 설계도면이 바닥에 지도처럼 펼쳐 있고, 여기저기 3D 프린트물들이 널려 있고도 모자라 무언가 널빤지에 빼곡히 메모까지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이 집에 살면서, 이 공간 안에서 한 가지 더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