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가을이 부른다

요술공주 셀리 2023. 10. 28. 09:55

앞집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바람 때문이다. 아니, 비 때문이다.
엊그제 밤엔 번개와 천둥이 무섭게 몰아쳤다. 집 안의 의자가 흔들릴 만큼 천둥이 내리쳤으니 이파리들은 또 얼마나 무서웠을까? 번쩍번쩍 날이 선 칼 같은 번개와, 지축을 흔드는 호통 치는 천둥으로, 고운 단풍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무서움에 떨다가 결국 이파리들이 떨어져 버렸다.
낙엽이 지더니, 여름 내내 나무에 가려져 있던 앞 집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50대일 적에 "떨어지기 전에 불타오르는 거야. 단풍처럼 인생이 그래."그렇게 말씀하셨다. 부지런과 검소가 몸에 밴 엄마는 그래서 50대에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셨을까? 자식들을 위해서 청춘을 잊으신 엄마다. 그리고 90 노인이 되신 하얀 백발의 엄마가 단풍처럼 고운 이유다.
 



산수유가 노랑옷을 입고 가만히 제 잎을 내려놓더니 바통을 건네받은 단풍나무가 점점 붉은 기운을 더하고 있다. 안갯속에서 삐죽삐죽 나타나는 가을이 아침햇살에 깨어나고 있다. 빛이 나는 가을, 너 정말 이쁘구나!
'울긋불긋 꽃 피는 산골'은 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떨어진 낙엽을 제 몸의 발 밑에 벗어놓은 가을이 기특하기만 하다. 시린 땅에 차곡차곡 낙엽 이불을 덮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이 아파요."
어제만 해도 채워져 있던 벼가 싹둑 베어져 있다. 산책 파트너인 반장님이 추수한 논을 바라보며 쓸쓸하다고 했다. 벌판도, 나무도, 정원도 빈 몸이 되는 늦가을이 그래서 싫다고 했다. 추위가 몸속으로 파고들면 마음이 아플 만도 하다. 나도 그러하니......


"그런데, 왜 그러지?
누가 바람을 보냈니? 아니. 지난밤처럼 서리가 내렸어? 아니. 천둥이 친 것도 아닌데 왜 미리 걱정을 하는 거니? 낙엽이 조금 떨어졌을 뿐이야. 햇살에 부서지는 고운 단풍이 이렇게나 어여쁜데, 빈 들판에 미리 마음 아파하지 마."
 



울긋불긋♬ 꽃 피는 산골 ♪ ♩ ♬, 울긋불긋 꽃대궐 꽃 피는 단풍 ~ ~. 가을이 노래를 부른다. 굵고 짧은 목소리. 그러나, 화사하고 우아한 노래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노래다.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 찰랑찰랑 흔들리는 이파리들이 합창을 하고 있다.
참으로 화려하고 행복한 하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