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이다
김장이 참 쉽지 않다.
작년에 이어 동생 없는 김장을 하려니 혼자서 하는 티가 팍팍.
작년엔 김치통을 씻다가 허리가 삐끗. 올핸 배추를 절이다 손목을 삐끗했다. 오른쪽 손목이 얼얼해서 네모난 파스를 붙였다. 이를 어쩌나, 김장 초반에 이미 힘을 또 빼버렸으니......
그러나 이왕 하는 일.
사각사각 오 예! 쓱싹쓱싹 예쓰!
엄마는 배추 씻고 나는 무채를 썬다. 무 한 덩어리를 손에 쥐고 무채 써는 도구에 집어넣지만 어쩐지 어설프다. 분명 요령이 있을 텐데, 한참을 썰어보지만 진전이 없다. 그런들 어떠리, 천천히 하자.
룰루랄라, 요령이 생길 때쯤 무채 완성. 도마만큼 커다란 무 4개를 사용했다.

갓과 쪽파도 썰기 완료.
오, 예! 이젠 버무릴 차례다. 엊저녁에 끓여놓은 북어탕과 찹쌀풀, 새우젓, 생새우, 멸치젓과 까나리액젓, 옥이가 준 갈치액젓까지 부어준다. 아, 마늘과 생강도 있구나. 그리고 화룡점정, 새빨간 고춧가루를 섞어주니 드디어 모양새가 갖춰진다. 제법 많은 양이다. 한참을 버무려 드디어 김칫소도 완성.
시작이 반, 김칫소가 완성되면 이제 김장 여정의 반을 달려온 거다. 아자, 아자 힘을 내보자!

엄마는 거실 바닥에서, 신세대(쉰세대?)인 나는 우아하게 식탁에서 절인 배추에 소를 넣기 시작! 엄마의 시계는 꼼꼼한 느린 시계. 나는 대강대강 어설픈 시계. 엄마가 김치통 한통을 채울 때, 나는 두통을 담아냈다. 배추는 많이 부족, 무는 풍족. 그래도 작은 통에 겉절이까지 담았으니 성공이다.

깍두기를 써는데 파스 붙인 손목이 아프다. 어깨도 지루하다 짜증을 내고 다리도 뻐근하다고 한다. 쉬었다 할까? 엄마도 힘드실 텐데, 그러나 꼿꼿이 앉아 꿋꿋이 일하시는 엄마를 보니 쉴 수가 없다. 다시 힘을 얻어 깍두기도 완성한다. 배추김치 4통, 깍두기 한통, 겉절이 한 통의 수확. 이걸로 충분하다.
아니, 무도 남았고 김칫소도 남았으니 대박이다.
주말에 남편이 강원도엔 귀한 굴을 사 오면, 밭에 남은 배추를 뽑아 굴겉절이를 하면 된다. 올해도 김치 풍년, 김장 풍년이다.

나무늘보 늦잠쟁이가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착한 어른이가 김장을 한 날이다.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하루종일 서 있었을텐데, 아버지까지 손을 보태주셨기에 일은 정오에 마무리되었다.
야호! 온몸이 뻐근하지만, 마음은 날아간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도 반갑고, 비의 무게로 떨어지는 단풍 이파리도 풍요로울 뿐. 거추장스러운 손목의 파스도 후다닥 떼어내니 아, 나는 이제 자유다.
겨울이 온다 한들 하나도 무서울 것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