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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노리 산책/잠깐(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11. 4. 09:20

면 소재지 도서관은 나 혼자 차지다. 사서 말고는 없다. 남쪽을 바라보는 소파에 앉으면 굳이 책을 보지 않고도 산이 눈에 한 가득이다. 이 얘기를 듣고 아내가 혼자 간 날 볕 잘 드는 쪽에 취준생인지 공부하는 여자 청년이 왔었다고 하더니, 어제 함께 가보니 그 분은 계속 그 자리를 사수하기로 한 모양이다.

어제는 마침 00면 경로잔치 하는 날이었다.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가다가 아는 분이 여기서 식사하고 가라고 잡아서 잔치 음식을 먹었다. 몇 살부터 공경의 대상인지, 공경의 주체인지는 모르겠으나 들려오는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가 이제 익숙하다.

오후에는 뜻밖에 공주에 사는 고등학교 여자 동창(할머니)이 임진각에 오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전화를 했다. 참 곱게 늙어가는 친구인데 보니 얼굴이 많이 상했다. 함께 모시고 온 남편이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 끝나고 답답해 하셔서 바람이나 쐬자고 해서 임진각으로 모시고 왔다는데, 부축해야 걸음을 걸을 정도다. 한 달에 한 번 지방에서 올라와 열흘씩 치료하고 내려가신다는데, 강행군이다. 루게릭처럼 몸이 굳어지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단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말씀은 곧잘 하신다. 이분도 내 고등학교 선배로 모교의 교장을 하신 분이다. "전교장, 아플 때 바로바로 병원에 가시게." 한 마디가 아프다.

요새 자주 듣는다. "인생 뭐 있어?" 쾌락주의 같기도 하고 허무주의 같기도 한 말. 그래 뭐 인생 잠깐이지 하면서도 그 잠깐을 어떻게 맞고 보내야 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잠깐

 

꽃이 피고 지는 게 잠깐이라고?

달이 뜨고 지는 게 잠깐이라고?

뜨거운 사랑도 식어 눈 한 번

깜빡할 만큼 잠깐이라고?

곱디고와 차고 넘치는

치명적인 슬픔이 잠깐이라고?

잠깐이 짧은 시간이라고?

결코 가벼이 할 수 없을지니

숨 한 번 들이고 내쉬는 그 잠깐이

허름한 인생의 온전한 시간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