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도 기쁜 일
"해방이다."
아이들이 탄 자동차가 마을 어귀로 꼬리를 감추자 남편이 한 말이다.
"애기 손님이 힘들긴 힘드네." 하면서도 남편은 70 평생 손주가 챙겨준? 생일은 처음이라며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어제는 남편의 생일. 처음으로 삼대가 모였다. 김장과 생일잔치로 힘들었지만 맛있고, 즐겁고, 기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최애 하는 싱싱한 회를 큰 아들이 사 왔기에 특별히 준비한 음식은 없었는데도 왜 그리 바빴을까? 아이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피곤하다.
그도 그럴 듯. 준비한 음식은 없으나 화, 수요일엔 김장을 하고 남편이 사 온 굴로 금요일엔 겉절이를 또 담았으니 그럴만하다.
눈이 빠지게 기다린 손주는 세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1박 2일 일정인데, 웬만한 의식주를 다 챙겨 온 손주짐이 반가움만큼 자동차 한가득이다. 짐을 풀어놓으니 넓은 방이 발 디딜 틈이 없다. 첫 손주를 안은 할미의 마음도, 설렘과 기쁨으로 마음의 방 또한 발 디딜 틈이 없다.
추석에 보고 다시 보는 손주는 그새 또 많이 자랐다.
재롱도 늘고 자기표현도 많아져서 울기도 잘하고, 벙긋벙긋 웃음도 많아졌다. 추석 땐 먹고, 자고, 울고 하던 손주가 소통하는 방법이 늘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찡찡대고, 졸리고 배고프면 특유의 표정으로 우는데, 며느리는 손주가 무얼 원하는지 다 알아차린다. 내겐 다 똑같은 울음으로 들리는데 며느리는 불편할 때와 무엇을 원할 때 우는 것을 다 구별할 줄 안다. 8개월 된 모자라서 그럴 거야 하면서도 며느리가 기특하기만 하다.
그런데 여전히 손주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야간형.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한 밤중에 더 신나게 노는 습관은 여전했다. 아들 며느리가 참 힘들어하는 일중 하나다. 그러나 난 힘든 일도 기쁜 일. 손주랑 새벽까지 놀아주고, 새벽 미사에 다녀왔다. 아침을 챙겨주고, 아들이 맛있다고 한 김치며 반찬을 챙기고 나니, 12시. 손주가 일어났다. 안아주고 싶지만, 점심시간이다. 아들이 먹고 싶다는 생선 전과 굴전을 만들어 점심을 챙겨주고 나니, 아이들이 비 오기 전에 출발한다고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어린 손주의 짐을 챙기고 먹이고, 응가까지... 2시간이 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아들네가 서울로 출발을 했다. 한바탕 폭풍 전야가 지나고 찾아온 일상. 식탁에 남겨진 점심을 두시가 훨씬 지나서야 한 술 뜨고 있다.
"하늘님. 비 소식이 있던데 울 애기가 서울도착할 때까지 멈춰주시면 안 될까요?"
기도 덕분일까? 별 걸 다 들어주신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 "잘 도착했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손주가 자동차에서 잘 자고 잘 도착했다니 참으로 감사하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아들네가 머물던 방도 정리한다. 손주가 머물던 이부자리에 코를 들이대고 그새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
"며늘아. 깜빡하고 깍두기를 안 보냈더구나. 넌 아기 세제를 놓고 갔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난 보내지 않고 넌 놓고 갔으니, 우린 곧 또 만날 운명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