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그러지 마라

요술공주 셀리 2023. 11. 6. 14:12

그러지 마라.
꼭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11월에 반팔을 입을 정도로 좋았던 날씨가 하루 만에 폭풍우라니......
지난밤, 번개와 천둥이 무서워 나뭇가지에 겨우 붙어있던 이파리들은 사선으로 쏟아붓는 바람 때문에 죄 땅바닥에 떨어져 포복 중이다. 나뭇잎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바람은 저리도 거세게 나무 기둥을 흔들어 댔는지...... 떨어진 나뭇잎들아. 너흰 또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낮은 포복으로 무릎을 꿇고 있단 말이냐. 
그러지 마라, 네가 뭔 죄가 있다고.....
그 굵은 나뭇가지를 마구잡이로 흔들어 이파리를 떨어뜨린 바람이 지나갔을 뿐이다.

우리 집은 좌청룡 우백호를 품은 가운데 집이다.
양 옆에 아름답고 멋진 집이 한채 씩 있는데 그 경계에 개나리며 단풍나무, 주목이 자리하고 있다.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있으니, 기쁨은 두 배요, 아름다움은 사계절 네 배로 키우고 있다. 
커다란 단풍나무는 왼쪽 경계에도, 오른쪽 경계에도 심어져 있다. 여름에는 아기 손 같은 초록을, 가을에는 별처럼 생긴 단풍과 낙엽을 감상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11월이면, 새빨간 낙엽을 잔디 위에 쌓아 놓곤 해서 우린 모두 숲 속의 공주가 되곤 한다.
그뿐이랴. 20년이 넘은 보리수까지 좌청룡 우백호이니 여름 한 철 루비 같은 보석으로 잼도 만들고 효소도 담그고 있다. 20년 넘게 자란 보리수는 우람한 나뭇가지를 우리 집까지 뻗어 반은 옆 집에 반은 우리 집에서 살고 있는데, 한 집은 우리 집 쪽으로 넘어온 보리수를 "얼마든지 따가라"하고, 한 집은 우리 집 쪽으로 넘어온 크고 실한 가지를 어느 날 싹둑 잘라버렸다. 손님으로 왔다가 우리 집 보리수인 줄 알고 따 먹었다는 이유라고 했다. 동그란 수형이 아름다웠던 보리수나무가 하루아침에 반쪽이 되어버렸다. 아프게 잘려나간 가지에서 눈물이 뚝뚝, 보기가 애처로워 그때부터 난 그쪽에는 발길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지 마라. 상처도 아프거늘, 눈 길도 발길도 주지 않으면 보리수는 또 얼마나 서럽겠니. 

11월에 중국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신청용 사진을 남편이 찍어주었다. 불빛 아래서 찍은 사진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주름이 너무 많네. 불빛 때문이야. 내일 낮에 밖에서 다시 찍자."
바람이 잦아질 때를 기다려 흰색 벽 앞에서 포즈를 취해 열심히 찍었지만, "중국 아줌마 같다."라고 해서 드라이까지 했지만 남편은 또 퇴짜라고 한다. 축 처진 눈과 주름진 얼굴의 아내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수십 장을 찍었지만 거기서 거기. "다 똑같아. 그냥 아무거나 한 장 고를래." 하고서야 사진 찍기는 멈췄다.
밤새 요란했던 천둥과 번개로 잠을 설쳐서 그렇다고, 그래서 주름이 더 보인다고 남편은 말했지만, 잠을 설친 날이 어제뿐이더냐? 그런데도 나이 듦이 번개 같고, 잘못함이 천둥처럼 충고 같기만 하다. 언제, 왜 주름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알레그로(빠르게)로 열심히 살았는데 그게 주름과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그렇다면 안단테(느리게)로 살았다면 늙음이 지체되었을까? 글쎄다. "우와. 동안이시네요."그 말이 듣고 싶다면 병원 가서 한 번 갈아엎으면 된다. 그런데 그러지 마라. 탐욕과 위장으로 주름진 마음을 수술할 수 있다면 감히 수술대 위에 올라갈 수 있겠으나 그게 아니라면 아무것도 하지 말거라. 나이가 먹는다는 게 진심과 겸손이 익는 거라면 모를까...... 깊어가는 가을 아래 엎디어 있는 저 낙엽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