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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노리 산책/날마다 쇼(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11. 10. 09:23

잠깐 바람 쐬고 오라고 풀어준 강아지가 어두워지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집 근방을 돌아다니며 진이야~ 하고 부르다가 돌아와 툇마루에 앉아 기다린다.

 

묶어 놓지 않고 기르다가 얼마 전부터 묶어 놓기 시작했다. 밭에 심어놓은 식물을 판다느니, 집 앞에 똥을 싸고 간다느니, 자기 집 개밥을 다 먹고 간다든지 하는 불평과 민원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강아지를 묶기 시작한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한 달쯤 전에 강아지가 옆 도랑에 빠진 것이다.

 

그때도 밤늦게까지 강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다니다가 도랑 옆에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듣고 내려가 강아지를 안고 올라왔다. 말이 개울이지(정식으로 각색천이라는 이름이 있음) 집 옆의 개울 높이는 2 미터 이상이다. 물이 불면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내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평소 흐르는 물의 양에 비하면 정비된 하천의 폭과 높이는 대략 100년 빈도의 강우량에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아래에서 강아지는 낑낑거리고 아래로 내려갈 긴 사다리도 없다. 마을 우수관 아래 작은 사다리가 하나 있는데 위에서 내려가기에는 한 참 짧고 그 견고성도 믿을 수 없다. 소방서에 전화해야 하나 망설이다 주차장 표시할 때 쓰던 밧줄을 가져와 옆의 다리에 묶고 도랑 아래로 내려갔다. 군대서도 안해본 유격을 하는 느낌이다. 간신히 강아지를 끌어올려 아내에게 인계하고 이왕에 놓여있던 사다리를 통해 올라왔다. 급한 김에 밧줄을 타고 내려갔더니 다음 날 손바닥을 보니 물집이 잡혔다. 강아지도 개인데 하천에 떨어지는 개도 있나? .

 

진이 이름을 부르며 온 동네를 찾아다니다 이전 생각이 나서 하천을 살폈다. 강아지가 빠졌으면 무슨 소리를 낼 터인데 호우로 불어난 하천 물소리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 아래 하천 쪽에 희번덕한 물체를 포착하고 랜턴을 비치니 강아지가 빛을 따라 위로 올라온다. 드디어 아내 앞에 마주한 진이. 물을 건너오라고 소리치니 물속에 들어왔다 물 속도에 밀려 떠밀려 가다 뒤로 후퇴한다. 급한 마음에 아내가 물의 깊이, 속도도 모른 채 건너가려다가 물에 떠밀린다. 다시 시도해 물을 건넌다. 강아지를 안고 물을 다시 건너려다 물에 휩쓸려서 건너오지 못하고 강아지를 안고 서 있다.

 

도랑 위쪽을 살피다 전화를 받고 내려가서 내가 본 상황이다. 물을 건너려는데 무거운 내 몸도 휘청한다.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건너서 진이를 안고 아내의 손을 잡고 하천을 건너온다. , 진이를 못 찾았으면 진이를 잠깐 풀어준 내가 모든 책임과 비난을 뒤집어쓸 뻔했다.

 

멀리서 데려온 닭 한 마리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과, 윗집 진돗개의 습격으로 인한 또 한 마리의 멀쩡한 어미 닭이 물려가 죽은 게 엊그제인데 강아지까지 실종이라니.

 

시골살이가 날마다 쇼다. 강아지를 잡아다 다시 묶어 놓고, 비는 계속 내리는데 상황이 종료되니 목구멍이 막걸리를 부른다. 닭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가 뭐라고, 다 애착 때문이리라. 생명, 참 질기다. 아내는 물을 건너다 돌에 부딪혀 또 얼굴에 훈장을 남겼다. 10. 상황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