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초겨울의 일기

요술공주 셀리 2023. 11. 13. 18:21

오후 5시. 동절기 햇님의 퇴근시간이다. 오늘도 햇님은 칼퇴를 했다. 햇님만 칼퇴를 한 것이 아니다. 5시 10분 요양센터의 차량도 칼퇴. 부모님도 그 시간에 귀가를 하셨다. "오늘도 밥 잘 먹고 잘 놀다 왔다."라고 날마다 같은 내용을 딸에게 보고? 하시는 부모님. 같은 일상이 참 고맙다. 

분주하게 배추를 뽑고 나르며 김장을 하더니 옆집은 서울에 간 모양이다. 주말 내내 커튼이 쳐져 있고 불 꺼진 창이다. 추워진 날씨 탓일까? 불 꺼진 창 때문에 손이 시린 것은......

밤새 꿈을 꾸었다. 친구에게 쫓기다가 깨고, 서울 가는 버스를 놓쳐서 깨고. 뒤숭숭한 꿈으로 잠을 설치다 늦잠이 들었다. 중천에 뜬 햇빛에 깨었을 땐 10시. '세상에, 이런 일이......' 보기 드문 일이 오늘 또 생겼다.

느리게 가던 시간이 갑자기 빨라진 건 형님의 전화 때문이었다.
하절기엔 4시, 동절기엔 3시로 정해놓고 늘 함께 산책하는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산에 가자."라고.
아침식탁에서 숟가락을 막 내려놓았을 때다. 부랴부랴 환복을 하고 우린 등산길에 올랐다. 하얗게 내린 서리에 노랗게 풀 죽은 잡초를 밟으며 오르다, 얼음을 만났다. 올 겨울? 처음 만난 얼음이다.
그러고 보니 이불처럼 쌓인 낙엽에서 소리가 난다. 사각사각, 제 주인이었던 나무가 벗어 놓은 이파리가 발에 밟힌다. 부스럭부스럭 추위가 겨울잠을 자는 소리다.
바람 한 점 없는 파랑하늘도 뻥 뚫렸다. 여름 내 초록 이파리로 보이지 않던 하늘인데, 욕심 없는 겨울이 이파리를 다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채워진 나의 번민도 저 낙엽처럼 다 떨어지면 좋으련만. 낙엽처럼, 겸손과 사랑의 이불로 차곡차곡 쌓이면 좋으련만. 내게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저렇게 뻥 뚫린 하늘 같은 사색의 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잠을 잔 월요일. 의미도 없고 한 일도 없이 보냈을 하루다.
정오의 데이트. 젊은 부부의 방문으로 생강차를 나누고, 어스름 저녁엔 윗집에 마실가서 모과차를 나누었다. 꽉 찬 하루, 온기를 나눈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시린 손을 녹여준 이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