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노리 산책/닭장의 진화(전종호)
아내가 목격한 진돗개 습격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진돗개 두 마리가 닭장을 앞뒤로 빙빙 돌더니 한 마리가 순식간에 울타리를 넘어 닭의 목을 물었는데 아내가 놀라 소리치자 잠깐 움칠하더니 아내가 길에 넘어진 것을 확인하고 목을 문 채 울타리를 넘어 개 두 마리가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순간에 일어난 일인만큼 아내는 정신이 없었고 그렇게 예쁘게 애지중지하던 원픽의 갑작스런 증발은 깊은 상실감을 주었다. 마침 현장을 지나가며 사건을 목격한 개 주인이 차에서 내려 사과와 함께 보상을 약속했으나 넋을 잃은 아내에게는 그저 면책을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이 소식을 KTX 행신역 주차장에서 전화로 들었다. 공주에서 임진강 여행을 하기 위해서 온 친구를 태우러 막 주차장에 차를 대는 참이었다. 침울한 분위기에 핏기없는 목소리였다. 사람은 오고 그냥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여서 기다리다 친구를 태우고 집에 오니 아내는 얼굴이 상기된 채 혼자서 이동식 닭장을 만들고 있었다.
마침 집을 짓고 남은 목재들이 있어서 이것들을 자르고 이어서 원래 닭장보다 큰 규모의 이동식 닭장의 얼개가 얼추 만들어져 있었다. 옆집에서 드릴을 빌려오고 집에 있는 못들이 짧아서 공사장 땅바닥을 돌아다니며 긴 못을 찾아서 사각형 형태의 아랫판을 만들고 그 위에 올릴 삼각형 형태의 기둥을 거의 조립해 놓은 상태였다. 원픽을 잃고 거의 정신을 잃고 무아지경에서 해낸 작업이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었다. 평소 톱질도 망치질도 안 해본 사람이 닭을 잃고 분한 마음에서인지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내다니 무아지경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 후속 작업을 당장 마무리해 놓지 않으면 맞아 죽을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오후에 강 건너 민통선에 들어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거기 갔다 일찍 나와서 나머지 작업을 하겠다고 아내를 이해시키고 겨우 일어섰다. 혹시 문 닫으면 큰일이기 때문에 먼저 철물점에 가서 긴 못과 타카와 구강망을 사서 차에 실었다.
돌아와서 작업은 생각하던 것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친구 이응우 화백이 이런 일에 선수였기 때문이다. 자연미술 현장에서 용접도 직접 한다는 그는 아래 받침대에 삼각기둥을 긴 못으로 박아 고정하고, 그 세 개의 삼각기둥을 긴 각목으로 연결하여 그 위에 망을 씌워 타카로 고정시켰다. 나 혼자 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도 안 나는 일을 척척해 나갔다. 닭을 습격당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닭을 잃은 날 그가 우리 집에 온 것은 필연인 것 같았다.
다음날 닭장 울타리를 보수했다. 흙보다 돌이 많은 땅이라 지주를 깊게 파지 못한 탓에 울타리가 느슨해진 것이라 땅을 더 깊게 파고 지주를 중간중간에 더 보강하는 작업이었다. 삽밖에 없는 우리에게 땅 파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같잖게 보였던지 옆집 영감님이 나섰다. 자기 집에 있는 철근 토막들을 가져와 지주를 몇 개 더 박고 지주와 지주 사이에 위아래로 철근 토막을 잇고 철근 토막과 지주를 철사로 결속했다. 경험은 역시 못 속이는 법이다. 높이는 더 올리지 못했지만, 울타리는 팽팽해졌고 팽팽해진만큼 높이도 다소 올라갔다. 보기에 좋았다.
낮에는 닭들이 이동식 닭장으로 풀밭으로 옮겨가 풀을 뜯으며 닭장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아내의 놀란 마음도 어느덧 진정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닭을 물어갔던 진돗개가 사는 공장의 직원이 찾아왔다. 사장님이 닭장 울타리를 새로 해드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그분들이 몇 차례나 찾아와 사과했고, 아내도 이웃들을 통하여 닭 키우는 사람에게 이런 일은 다반사라는 것을 들어서 알게 되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지나서 괜찮아졌노라, 사장님께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고맙다고 전해달라 말씀드려 달라고 했다.
이틀 후에 직원 3명이 오더니 닭장 울타리 주위로 학교 펜스 같은 굵고 튼튼한 펜스를 치기 시작했다. 땅 파기가 쉽지 않은지 오후에는 직원 7명이 와서 곡괭이로 땅을 파고 펜스를 둘렀다. 큰 닭 한 마리와 병아리 세 마리가 살기에는 너무나 크고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닭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닭장이 새장 같다는 동네 사람들도 요즘은 닭을 더 갔다 넣으라고 성화다. 풀밭으로 밀고 다니는 게 힘들었던 이동식 닭장에도 바퀴를 달았다. 그 사이 닭장에도 변화가 좀 있었다. 진돗개가 물어갔던 원픽과 거의 똑같은 뉴픽이 새로 들어왔고. 병아리들은 성계 수준으로 거의 커 버렸으며, 누가 키우기 어렵다고 놓고 가버린 부화한 지 2주일쯤 된 병아리들이 참새 목소리를 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