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미술 이야기/하나의 작품이 인생을 이끌다 2(이응우)
당시 나의 야투창립전 참가를 이끌었던 그 선배는 대학 1학년 때 서울로 찾아가 만날 만큼 공주의 미술후배들에게 잘 알려진 분이었다. 그리고 나의 군입대 전 여러 번 만나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창문을 통해 마주한 호박덩굴과의 만남, 매일 같이 방으로 찾아오는 쥐(당시 그는 서군이라 칭함)와의 대화 등 일반적 정서와 거리감 있는 내용들을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비록 군복무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의 범 생명현상에 대한 존중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은 나에게 생소한 분야의 미술활동에 동참할 충분한 동기유발이 되었었다.
야투의 창립 한 달 전 수행된 이 퍼포먼스를 통해 23세의 나는 야투의 일원이 된 것이다. 당시의 감회를 “내 자신이 금강물의 일부가 된 듯 의식이 맑아지는 심리적 변화와 함께 스스로 순수해지는 느낌 속에 깊이 젖어들었다.(1994년 이응우 자연 속의 인간전 중)”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 후 40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군복을 입었던 때나 나이를 먹은 지금이나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은 항상 나를 깨우치는 스승이며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의 원천이다. 자연체험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이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 또는 미술선생으로 인생을 살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자연현장에서의 미술연구는 더 밀착된 관계로 나와 자연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예술적 성취보다 더 심각한 자연의 붕괴를 목도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하게되었다.
< 나무와 돌로 된 원 >
인류는 대자연을 대상으로 도전과 응전을 통해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나 그 결과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를 풍요롭게 해 준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인간중심 철학, 그리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결과 오늘날 심각한 부익부빈익빈의 문제를 야기했으며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유일한 지구의 환경을 회복불능의 지경으로 몰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승자들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의 소유와 더 편리한 세상을 위해 치닫고 있다. 그러나 첨단의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고 전례 없이 편리한 세상을 구축하더라도 자연의 붕괴를 막지 못하면 우리의 문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없어도 존재하지만 인간은 자연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은 그의 시에서 ‘마당을 쓸었다. 세상 한 구석이 깨끗해졌다.’고 했다. 나는 비록 한 사람의 예술인에 불과하지만 나의 자연현장연구 과정에서 얻은 경험(자연미술작품)을 통해 자연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