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이기원

화가 이기원 13(귀일)

요술공주 셀리 2022. 8. 15. 15:10

  1992년을 마지막으로 대학 출강도 그만둔 뒤부터 이기원은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에 투자했다.

15년 넘은 오랜 기간을 장남가족과 일산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보다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위해 경기도 광주에 새로운 화실을 겸한 자택을 마련해 분가하였을 정도다. 또한 70세가 넘은 나이에 컴퓨터를 다루는 법까지 따로 공부하였을 정도로 자신의 작품을 정리하는 작업에도 큰 열정을 보였다. 그렇지만 역시 작품 발표에 있어선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출품하지는 않았고, 거의 '창작미술가협회전'과 '가톨릭미술가협회전' 정도에만 참여하였다. 이 시기 작업에서 추구한 방향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예술원에서 발간한 한국예술총집 미술편 IV(2003)에 실린 작가 노트를 통해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도공품이나 목공품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수수하고 순진함, 말하자면 인공 이전의 자연은 허심탄회한 제작 태도, 이러한 것들이 작품에서 표출되기를 갈망해 본다.”

 

  특히 제45회 창작미협전에 출품한 작품 <귀일(歸一)>에 대해서 작가가 직접 밝힌 제작 동기는 작업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구성은 2005년 가톨릭미술협회전에 출품한 <성체헌양(聖體顯揚)>에서 거의 같은 형태로 계승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속 중앙에 그려져 있는 쪼개진 원은 미사에서 신부가 성체를 쪼개어 나누는 예식, 즉 성경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며, 그런 점에서 작가의 추상회화는 신앙심을 투영한 성미술의 맥락으로 해석할 여지도 남아 있다. 실제로 이기원은 성인의 모습을 직접 그리지는 않았어도, 자신이 다녔던 '수색동 성당'을 신축하는 데에 헌금뿐만 아니라 성당 건축에 깊이 관여, 내부의 디자인 작업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바도 있다.

 

작품 귀일2000년도에 본인이 소속되어 있는 창작미술협회 제45회 정기전에 출품한 작품이며, 새천년을 맞는 희망찬 기운을 기하학적 형상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귀일은 깊은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기 보다, 세상만사 나누어지고 갈라진(, ) 여러 형상을 하나로 귀합하여 엄격하고 조화된 질서미를 추상화하여 표현하였다.” 이기원의 말이다.   

 

 

이기원-귀일(歸一), 2000, 캔버스에 유채, 97×130.3cm, 45회 창작미협전 출품

 

 글:  안태연(미술사가), “이기원, 사색의 창을 향하여”(2019)에서 발췌